“매일 연예뉴스만 내보내라고?”…공공기관에 ‘꼴찌 등급’ 매긴 이상한 경영평가

최근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TV),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아시아문화원은 모두 최하위 점수인 E등급을 받았다. 종합 평가는 주로 경영관리와 주요 사업 두 부분으로 이뤄지는데, 세 기관은 주요 사업에서 최하위 또는 최하위 수준의 등급(아리랑TV E등급, 영진위 E등급, 아시아문화원 D등급)을 받아 종합 등급 꼴찌로 내려앉은 것이다.

주요 사업은 한마디로 ‘실적’이라는 계량 지표로 환산된 점수를 반영한 평가 방식이다. 이를테면 아리랑TV는 시청률, 영진위는 매출액, 아시아문화원은 유료 입장객 수 등이 평가의 잣대로 계산된다. 모두 상업적 성과지표다.


아리랑TV는 해외방송 시청도달룔 경쟁지수로 사업성과를 평가한다. 측정 산식은 시청 가능한 모든 세대 중 한 번 이상 방송에 노출된 세대의 비율을 따진다. 지난 2014년 시청도달률 지표 방식이 도입된 이후 아리랑TV는 3년간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았다. 비교 대상은 일본 NHK월드 등 아시아국 국제방송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경영평가단이 목표의 2배를 올리는 ‘2편차 정책’을 적용했고 비교대상 마저 세계 최고 수준의 BBC 월드로 바꾸면서 사실상 ‘강도 높은 실적’ 위주의 평가방식이 도입된 셈이었다.

평가 방식이 바뀌면서 아리랑TV는 시청도달률 지표 16점 만점에서 6.865점을 받았다. 2016년 C등급에서 지난해 E등급으로 수직 추락한 것도 ‘성과’만을 내세운 달라진 평가방식 때문. 공공기관의 의무인 콘텐츠 질을 높이거나 국가 이미지 기여도 같은 공공성 대신 민간 기업과 싸워 이길 상업적 효과에 주력하라는 의미로 수용됐다.


아리랑TV의 한 관계자는 “국가홍보의 공공성에 부합하는 자체 콘텐츠의 질적 지표보다 시청률만 높여 상업방송과 경쟁하는 양적 지표에 충실하라는 얘기처럼 들렸다”며 “최하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케이팝과 연예뉴스만 내보내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상업적 성과를 위한 지표는 다른 공공기관에도 마찬가지. 영진위도 한국영화 매출액, 한국영화 해외 수출계약 건수 등 숫자로 표기된 성과만을 주요 기준으로 삼아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한국 영화시장 활성화에는 관객 동원 수나 계약 건수만큼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하거나 새로운 창작 환경에 도움을 주는 방향이 필요한데도 측정 산식은 여전히 극장 및 부가시장 매출액을 평가의 주요 부분으로 삼았기 때문.

(왼쪽부터) 아리랑TV, 영화진흥위원회, 아시아문화원.

영진위 한 관계자는 “양적 평가 방식이 지나쳐 공공기관의 성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며 “(등급) 성적을 생각하면 상업영화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2015년 설립된 신생 공공기관인 아시아문화원은 아시아 각국의 문화예술인과 교류하며 문화원형을 전문적으로 연구·수집하고 전시·공연·페스티벌 등의 문화콘텐츠로 제작해 유통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 기관의 측정 산식은 연간 전시관 유료 입장객 수로, 최고 목표는 기준치의 120%, 최저 목표는 기준치의 80%다. 입장객 수가 기준치에 미달하면 계량 지표인 주요 사업 점수가 깎이는 것이다. 아시아문화원도 결국 E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세 기관은 모두 경영관리와 주요 사업의 평가 비율은 45대 55다. 주요 사업 중에서도 성과를 주요 목표로 삼는 계량 지표 비율은 모두 62%였고 비계량 지표 비율은 38%였다. 계량 비율이 높다 보니, 여기서 만점을 받지 못하면 나머지 부분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종합 D등급 이상 받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A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도 자생력을 넓히는 차원에서 실적 위주의 경영평가도 필요하다”며 “하지만 기관의 정체성이 공공성에 있는 만큼 상업적 지표의 과도한 평가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