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AI 혈투' 재연…숨은 승자는 구글·아마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8'에서 중국 화웨이의 리차드 유 최고경영자(CEO)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심재현 기자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8' 행사장인 독일 메쎄베를린의 그랜드시어터에 1000여명이 넘는 구름떼 관중이 몰렸다. 중국 화웨이 리차드 유 최고경영자(CEO)의 기조연설을 보러온 전세계 미디어, IT업계 관계자들이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화웨이의 AI(인공지능) 플랫폼으로 AI 개발 환경을 표준화하겠다"고 말했다. 차세대 ICT 시장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 꼽히는 AI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을 넘어서겠다는 자신감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차세대 ICT(정보통신기술) 시장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 꼽히는 AI 분야에서 벌어지는 한·중·일 경쟁의 치열한 단면 중 하나다.

◇AI 차별화 나선 중국…갈 길 바쁜 한국 = 경쟁업계가 화웨이의 자신감을 허투루 보지 않는 것은 화웨이가 이런 전략에 맞춘 중간 결과물을 꾸준히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이날 7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용 AI 전용칩 '기린 980'을 공개해 참석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칩은 하드웨어 중심의 AI 전략을 천명하면서 지난해 9월 선보인 '기린 970'의 후속작이다. 구글, 아마존 등 미국업체가 주도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AI 전략과 차별화된 흐름으로 외국어 번역처럼 스마트폰에서 자주 사용하는 AI 기술을 클라우드컴퓨팅과 연결하지 않고 스마트폰에서 자체적으로 좀더 빠르게 수행하게 하겠다는 게 화웨이의 목표다.

소프트웨어 역량이 미국을 넘어서기 힘든 현실에서 중국기업이 자신들의 강점인 하드웨어에 기반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이다. 화웨이의 노림수대로 AI의 중심이 클라우딩컴퓨팅과 소프트웨어에서 개별 기기로 옮겨지면 글로벌 AI 전략의 주도권도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


거세지는 중국의 추격에 맞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업체는 글로벌 톱 수준의 하드웨어 가전 경쟁력과 이를 통해 축적되는 빅데이터 분석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소비자가전과 AI 분야를 총괄하는 김현석 대표(사장)가 지난달 30일 독일 베를린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는 한해 5억대의 기기를 판매하는 유일한 기업"이라고 강조한 게 이런 맥락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과 아마존이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주도한다면 삼성전자나 LG전자는 일종의 하드웨어 분야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양사는 각각 빅스비와 LG 씽큐로 소프트웨어 기반 AI 플랫폼 경쟁에도 뛰어든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빅스비를 통한 자체 플랫폼 강화에, LG전자는 자체 플랫폼 개발과 개방을 통한 협력에 무게를 두는 전략이지만 결국 플랫폼 강화라는 지향점은 같다.

일본도 분발하고 있다. 사람의 반응을 학습한다는 머신러닝 기반 AI 제품 가운데 올 IFA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건 소니의 로봇강아지 '아이보'다. 소니는 올초 CES에서 12년만에 선보인 신형 아이보를 IFA에도 들고 나왔다.

머리와 턱 밑, 등에 있는 센서로 사람의 손길을 감지해 반응하고 액정표시장치 눈과 꼬리, 입, 혀, 22개 관절로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보는 1999년부터 8년 동안 출시됐던 1세대 제품보다 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인다.

소니 관계자는 "아이보는 진짜 강아지처럼 자신을 아끼고 예뻐하는 사람에게 더 친밀하게 다가가고 가족 구성원의 서열을 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클라우드컴퓨팅과 빅데이터 분석, AI 발달의 산물이 곧 아이보라는 설명이다.

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8' 야외광장에 설치된 '구글 어시스턴트' 전시장에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여기서부터 60분'이라는 문구가 보인다.(왼쪽 사진) 아마존의 실내 전시장에도 음성인식 인공지능 서비스 '알렉사'를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오른쪽 사진)

◇'위풍당당' 구글·아마존…전시장 경계 넘나든 영향력 눈길 = 한중일 3국이 올초 세계 최대 전자쇼 'CES'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무대를 옮겨 또 한 번의 혈투를 벌이고 있지만 전시장 곳곳을 호령하는 숨은 승자는 여전히 구글과 아마존이다.

올 IFA에 처음 참가한 구글의 전시장엔 음성인식 AI 플랫폼 '구글 어시스턴트'를 시연해보려는 관람객으로 대기시간만 1시간이 넘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구글 어시스턴트를 작동시키는 명령어 "오케이 구글"(OK Google)의 독일어판인 "마크 말 구글"(Mach mal Google·한번 해봐 구글)이 적힌 대형 광고판도 컨벤션센터 전역을 도배하다시피 뒤덮었다.

주로 스타트업이 모인 전시동에 삼성전자의 60분의 1에 불과한 200㎡(약 60평) 면적의 전시장을 꾸린 아마존에도 끊임없이 사람이 몰렸다. 아마존은 2014년 11월 음성인식 AI 플랫폼 '알렉사'를 탑재한 스피커 '에코'를 공개하면서 현재 전세계 AI 플랫폼의 80~90%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양사 모두 전시장 한켠에 삼성전자 세탁기, LG전자 TV 등을 놓고 이들 제품이 구글 어시스턴트와 알렉사에 기반한 IoT로 서로 연결되는 모습을 시연했다.

이들의 진짜배기 영향력은 자체 전시장이 아니라 다른 기업의 전시장에서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삼성전자·LG전자·소니·하이센스 등 글로벌 가전업체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등 벤처기업까지 구글 어시스턴트, 알렉사와 연동된 기기를 소개하면서 시연에 나섰다.

'인텔 인사이드' 로고가 글로벌 수준의 PC나 노트북을 가늠짓는 척도로 쓰이듯 '구글 어시스턴트'나 '알렉사 인에이블드'라는 문구가 알만한 제조사 제품마다 경쟁적으로 따라붙는 상황이다. 지난해 IFA 당시 대형 IT 기업 중에선 유일하게 구글 어시스턴트와 알렉사 서비스를 선보이지 않고 빅스비를 고집했던 삼성전자도 올해는 알렉사와 연동된 퀵드라이브 세탁기를 전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전시장을 꾸린 삼성전자나 화웨이, 소니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의 전시장을 운영하지만 글로벌 기업의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는 주인공은 단연 구글과 아마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