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공략 한계·가능성 모두 확인…삼성·LG "혁신을 기회로"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8'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IT기업이 유독 약한 유럽시장에서 또 한번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전세계에서 1800개가 넘는 기업이 참여했지만 신기술의 핵심으로 꼽히는 AI(인공지능) 분야의 주인공은 구글과 아마존이었고 신기술을 걷어낸 가전 분야에선 밀레나 보쉬 같은 유럽 전통 100년 기업의 벽이 여전히 높았다. 우려했던 중국의 추격이 추월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참가기업 관계자들은 물론, 업계 전문가들도 과감한 투자와 기초연구 강화로 우리만의 장점을 살려 시장 공략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기술 분야의 규제혁신이 절실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 TV AI 화질 경쟁력에 전세계 주목 = 개별 완제품 형태의 AI 가전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글로벌 톱 수준의 기술력을 드러냈다. 특히 TV 시장 1, 2위의 양사가 내놓은 AI 기반 신제품은 유럽을 넘어 글로벌 시장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UHD로 불리는 기존 최고 화질의 4K보다 4배 선명한 8K QLED TV를 내놓으면서 8K급 영상이 거의 없어 제대로 된 화질을 즐길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한 세계 최초의 AI 업스케일링(고화질 변환) 기술을 선보였다.


LG전자, 샤프, 도시바, TCL, 하이얼 등 다른 기업의 8K TV와 달리 단순 전시용이 아니라 이달부터 출시한다는 점에서 기술력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다.

대다수 8K TV가 지원하는 업스케일링 기술 차이도 컸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거래선을 대상으로 비공개로 진행한 화질비교 시연에서도 두드러진 화질 차이에 참석자들이 혀를 내두른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백만 편의 영상을 학습한 AI가 화질을 보정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데이터가 쌓일수록 화질 보정 기술력이 더 높아지는 구조"라며 "지금도 SD(HD보다 한단계 낮은 영상 등급) 화질을 8K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 구글·아마존 AI·IoT 생태계 독식…"독자 강점 키워야" = 개별 제품 단계에선 국내의 AI 기술력이 주목을 받았지만 AI가 IoT(사물인터넷)와 맞물려 가전제품이 서로 연동돼 작동하는 스마트홈 개념에서 주목을 받은 곳은 음성인식 AI 플랫폼을 장악한 구글과 아마존이었다.

아마존은 전시장에 70개 파트너사의 지도를 붙여놓고 자사 음성인식 AI 플랫폼 '알렉사'와 IoT 서비스 '아마존대쉬'를 홍보했다. 알렉사가 탑재된 아마존 스피커 '에코스팟'으로 보쉬의 외부 감시용 카메라를 작동시켜 집안에 앉아 바깥 상황을 살피고 도어락을 음성으로 잠궜다 여는 시연이 펼쳐졌다.

아마존 대시와 연동된 세탁기와 프린터는 세제나 토너 같은 소모품이 떨어지자 알아서 아마존에 주문, 결제했다.

구글은 49개 파트너사 전시장에 직원을 보내 '구글 어시스턴트'를 홍보하는 맞불 전략을 놓으면서 사실상 IFA에서 가장 넓은 전시장을 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체 전시장에도 구글 어시스턴트를 체험하려는 인파로 9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대기줄이 늘어섰다.

양사의 경쟁구도 속에 애플 등 다른 기업이 내놓은 AI 플랫폼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 2분기 전세계 AI 스피커 시장점유율에서 아마존이 41%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고 구글이 27%로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아마존 알렉사와 연동되는 가전 브랜드는 3500개에 달한다. 올초까지 자체 AI 플랫폼 '빅스비'를 고집했던 삼성전자도 이번 IFA에서 알렉사와 연동된 세탁기를 내놨다.

전문가들은 AI 플랫폼 경쟁에서 국내업체들이 뒤쳐졌지만 한해 5억대 이상의 IT·가전을 판매하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일상생활의 빅데이터 축적 역량에서 확보한 압도적인 경쟁력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체 기기로는 AI 스피커가 거의 유일한 아마존이나 구글이 삼성전자를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다.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대표도 독일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AI 경쟁에서 삼성전자의 최대 강점은 연간 5억대의 IT·가전에서 쌓이는 빅데이터"라며 "이런 경쟁력을 갖춘 곳은 삼성전자뿐"이라고 말했다.

◇ 유럽 가전 명가도 스마트시장 진출…중국굴기 재확인 =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의 원조격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뚜렷한 유럽 가전업체들도 AI·IOT 신기술 경쟁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119년 전통의 밀레는 식기의 오염 정도를 인식해 세제를 자동으로 투입하는 식기세척기 'G7000'을 선보였다. 내년 창립 100주년을 맞는 일렉트로룩스는 스마트폰 앱으로 세탁방식을 관리하는 세탁기를 공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 기능보다 내구성을 중시하는 유럽 가전업체들이 AI·IOT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유럽시장 판도를 뒤바꿀만한 변화"라며 "지금껏 유럽시장에서 고전했던 국내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올해를 사실상 유럽 빌트인 시장 진출 원년으로 삼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삼성전자는 2016년 인수한 미국의 프리미엄 빌트인 브랜드 데이코를 발판으로 동유럽 최대 가전시장인 폴란드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고 LG전자는 유럽 현지 가구명가와 손잡고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출시하면서 20년 보증을 내걸었다.

TV를 중심으로 중국 기업의 베끼기 전략은 여전했지만 전문가들은 드론 등 몇몇 시장에서 글로벌 기술력을 뽐내는 중국 기업이 늘고 있는 데 더 주목했다. 세계 1위 드론 제조사인 중국의 DJI는 올해도 야외 전시장을 꾸리고 드론 마니아뿐 아니라 미디어, 산업계 관계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화웨이의 리차드 유 최고경영자는 개막 기조연설에서 7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용 AI 전용칩 '기린 980'을 공개하고 AI 플랫폼 경쟁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