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 있나…일본·중국·베트남 주식도 산다

직장인 이지만씨(31·가명)는 요즘 국제 뉴스를 꼼꼼히 챙겨 본다. 지난해 친구와 함께 미국 아마존 주식을 샀는데 1년 새 주가가 2배 가까이 뛰자 해외주식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과 베트남 시장에서 종목을 골랐다. 윤씨는 "처음에는 해외주식을 사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실적이나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주가가 널뛰기하는 국내 주식보다 글로벌 대표기업에 돈을 묻어두는 것이 속편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사업가 김윤수씨(55·가명)는 금융자산의 30%를 해외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주식에 투자금의 60%를, 나머지로는 중국·베트남 주식을 샀다. 시간이 날 때마다 PB센터에 들러 해외주식 종목도 추천받는다. 최근 관심을 쏟는 분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장이 예상되는 로봇, 자율주행차, 미래먹거리 등이다. 이씨는 "미국과 베트남 주식 수익률이 쏠쏠한데 중국 주식은 마이너스가 났다"며 "최소 5년 이상 투자한다는 장기전략으로 해외주식을 시작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해외주식 직구(직접 구매) 시대가 열리면서 미국뿐 아니라 홍콩·일본·중국·베트남 등 아시아 증시에서 종목을 직접 사고파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미국 금리인상, 미·중 무역전쟁, 신흥국 금융위기 리스크 등 대외 요인에 유독 약한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빼 글로벌 시장으로 분산하는 투자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서는 것이다.

◇"명품백 아닌 주식 직구"…아시아 증시에 돈 묻었다=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4일 현재 해외주식 결제대금은 231억7700만달러에 달한다. 국내 투자자들이 올 들어서만 26조원 이상 해외주식을 직접 사고판 셈이다. 2016년 같은 기간(83억5200만달러)과 비교하면 2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 연말에는 해외주식 결제 규모가 35조원을 넘어 지난해에 이어 역대 최대치 기록 행진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별 비중은 미국이 65.9%(152억8500만달러)로 압도적으로 높다. 이어 홍콩 17.6%(50억7900만달러), 일본 5.9%(13억6400만달러), 중국 5.1%(11억8000만달러) 순이다. 미국 증시에 노크한 자금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었는데 아시아 주요 국가로도 투자가 늘었다. 홍콩 증시 직구 거래금은 106%, 일본과 중국은 60%, 43% 증가했다.


베트남 주식 직구 규모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지속하고 있는데다 한국기업 진출이 잇따르면서 투자자 관심도 커졌다. 베트남 주식 상위 10개 종목 결제대금은 2016년 9월 1796만달러에서 지난해 9월 8136만달러, 올 9월 5억1488만달러로 뛰었다. 2년 만에 주식 직구액이 28배 늘어나는 대기록을 썼다.


◇어떤 종목 샀나…'텐센트·소니·항서제약·빈그룹' 인기=올 들어 해외주식 직구족이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많이 산 종목은 IT와 바이오, 보험, 여행, 식품 등 다양했다.

홍콩 증시에선 '차이나 AMC CSI300 ETF'를 가장 많이 사고 팔았다. 중국 IT 대표기업인 텐센트와 3S바이오, 길리자동차 등이 거래 상위종목에 올랐다. 일본에선 소니(전자)와 넥슨(인터넷), 라인(인터넷), 소프트뱅크(IT), 시세이도(화장품), 무라타(전자장비) 등을 많이 샀다.

중국 주식 중에서는 항서제약, 중국평안보험(홍콩·중국 동시 상장), 중국국제여행사(CITS), 인화MMF, 마오타이, 메이디그룹 등에 주목했다. 베트남 증시에서는 'VFMVN30 ETN 펀드'를 가장 많이 매수했다. 빈그룹(부동산개발·유통), 바오베트남(보험), 호아팟그룹(철강), 비나밀크(식품) 등도 거래가 많았다.

글로벌 격랑 속에서 아시아 증시도 영향을 받으면서 국가·종목별로 수익률은 엇갈렸다. 뚝심을 발휘한 일본과 베트남 시장은 개별 주식 수익률도 비교적 좋았다. 일본 니케이225가 연초 대비 3% 정도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소니는 18.9%, 소프트뱅크는 10.1% 올랐다. 시세이도는 44.6% 치솟았다. 베트남 호치민 지수도 올 들어 2% 안팎 내려갔지만 빈그룹·바오베트남 등 개별종목 주가는 30% 이상 상승했다. 베트남개발은행과 마산그룹도 20% 안팎 치솟았다.

반면 홍콩과 중국 주식 수익률은 좋지 않았다. 항셍지수와 상해지수가 올 초 대비 각각 10%, 18% 안팎 빠졌고 대표 종목 주가도 주저앉았다. 길리자동차는 40.5% 추락했고 텐센트(-18.9%), 중국평안보험(-10.7%), 3S바이오(-6.8%), 항서제약(-4.3%) 등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금이 바닥, 더 사겠다"…무역전쟁·신흥국 리스크에도 'GO'=홍콩·일본·중국·베트남 등의 대표 종목이 올 3~4월 고점 대비 조정을 받은 만큼 앞으로 투자를 늘리겠다는 자산가들도 있다. 중화권과 베트남 기업 주식을 다수 보유한 한 투자자는 "각 국가의 산업을 대표하는 대형주의 경우 조만간 주가가 회복될 것"이라며 "고점을 찍고 내려온 종목들을 종합 분석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18 한국부자 보고서'에서도 앞으로 해외주식 등에 직접투자를 하려는 부자는 전체의 27.8%에 달했다. 금융자산 50억원 이상 부자의 경우 이 비중이 45.3%까지 늘어났다. 해외투자 선호 국가로는 중국(25.2%)이 1위, 성장잠재력으로 주목받는 베트남(9.3%)이 2위를 차지했다.

주가가 급락한 홍콩·중국 등 시장에 대한 낙관론도 있다. 정희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중국은 내부 변화에 따른 성장통과 미국의 거센 통상압박이라는 이중고에 빠져있지만 곧 새로운 활로를 찾을 것"이라며 "모바일 소비채널 성장, 금융시장 개방 등 조건을 낙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패권경쟁 사례를 비춰볼 때 미국이 일방적인 공세를 지속하기보다는 적정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