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 휩쓰는 나라 공통점 보니…'분석기술·장비 고도화'

노벨상 시즌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과학기술계에서는 벌써부터 누가 노벨과학상을 받을 지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관전포인트 중 하나는 새로운 연구장비를 개발한 연구자가 또다시 수상의 영예를 안을 지 여부다.


지난해의 경우 노벨화학상은 ‘저온전자현미경 관찰법’을 개발한 과학자 3인(자크 뒤보셰·요아힘 프랑크·리처드 헨더슨)에게 돌아갔다. 같은 해 노벨물리학상도 중력파 관측을 위한 라이고(LIGO,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기)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연구자 3인(킵손·라이너 바이스)이 수상했다.

앞서 2014년에는 ‘광학현미경’을 개발한 박사 3인(에릭베치그·슈테판 헬·윌리엄 머너)이 노벨화학상, 2009년에는 디지털카메라 기술에 있어 획기적인 발전으로 기록된 ‘CCD’(전하결합소자)를 발명한 과학자 2인(윌러드 보일·조지 스미스·배리 배리시)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2003년에는 의료현장에서 주로 쓰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개발하는 데 기틀을 마련한 2명의 연구자(폴 라우터버·피터 맨스필드)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2000년 들어 노벨상은 특정 현상을 규명하는 것보다 그런 것을 분석할 수 있는 첨단연구장비에 더 주목하고 있다”며 “이 같은 장비로 우리가 여태껏 몰랐던 새로운 연구영역을 더 많이 발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분석기술·장비 분야 수상 8.2%…연구장비산업 美·日 주도=9일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연구장비가 노벨과학상 수상에 미친 영향’ 이슈리포트에 따르면 1901~2017년 사이 노벨과학상 수상 348건 중 분석기술·장비 분야 수상건수는 27건(8.2%)이다. 수상자 수를 기준으로 보면 총 599명 중 46명(7.7%)에 해당한다.


이 데이터에서 보듯 노벨과학상에서 연구장비 분야 수상 비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노벨 물리학상의 경우, 가속기를 이용한 연구가 약 25%를 차지한다. 가속기는 고에너지로 가속화된 입자들을 충돌시켜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는 장비다.

국가별 분석기술·장비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보면 미국(14명, 30.4%)이 가장 많고, 영국(11명, 23.9%), 독일과 스위스가 각각 5명(10.9%)으로 전체 인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이 결과는 세계적인 연구장비 기업들의 분포도와 비슷하다. 이를테면 전세계 연구장비 판매 매출 순위 1위 기업은 미국의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으로 50여개국에 약 7만명의 직원들과 함께 약 43억8600만 달러(약 5조원, 2016년 기준)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매출액 기준으로 선정한 톱 25위 내 기업은 미국 9곳, 일본 6곳, 스위스와 독일 3곳, 영국 2곳 등이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기업을 배출하고 있는 일본은 2005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첨단계측분석기술·기기개발’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과학분야 노벨상의 85%가 연구장비 고도화에 따른 새로운 발견과 연계돼 있다는 분석결과를 토대로 이 사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반면 국내 연구장비산업은 매우 영세한 편에 속해 통계조차 내기 힘든 상황이다.

◇높은 외산장비 의존도…기초과학연구비 샌다=연구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외산 분석기술·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연구재단 정책연구팀 천기우 연구원은 “새 연구장비는 개발국에서 우선 자국의 R&D(연구·개발) 목적과 특성에 맞게 개발, 충분히 활용한 뒤 해외로 수출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 장비를 수입해 쓴다 할지라도 국내 연구진이 수행중인 연구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어 효과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국가 R&D 역량을 높이기 위해 연구장비 분야 투자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장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위원은 “차별화된 연구성과는 첨단장비를 통한 고품질 연구데이터 확보에서부터”라며 “노벨과학상 수상 뿐 아니라 추격형에서 선도형 R&D로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연구장비 분야 육성을 위한 전략 및 제도 마련이 필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