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같은 '기내 난동'… 약한 처벌에 '하늘 위험' 여전

영상제공=제주항공

#1. 지난달 29일 저녁 괌에서 인천으로 오는 제주항공 여객기에서 술에 취한 20대 남성 승객 A씨가 2시간 동안이나 난동을 부리는 일이 발생했다. 말리는 다른 승객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승무원이 경고를 한 뒤에도 심지어 비상구 문까지 열려고 해 탑승객들은 불안에 떨었다. 인천공항경찰대와 탑승객들에 따르면 A씨는 인천에 도착해서도 큰 소리로 욕설을 하는 등 난동을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공항경찰대는 지난주 해당 항공기 승무원 2명과 승객(목격자) 1명으로부터 진술을 확보했으며 조율을 거쳐 조만간 A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항공기내 난동 사건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음주 후 폭언과 폭행은 물론 성희롱과 성추행도 끊이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기내 금연’ 조치에도 여전히 흡연행위로 적발된 건수가 해마다 300여건을 훌쩍 넘는다.

과거 항공기 추락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던 기내 난동(Air Rage)은 위험성 때문에 항공사는 물론 정부도 나름의 방지책에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처벌 형량 강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등 사후조치에 국한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노플라이제도’(No-Fly System)와 같은 사전적 탑승 거절 등의 조치까지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 불안한 항공기… 해마다 400건 넘는 기내 불법행위 발생
1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1년 152건이었던 기내 난동과 폭력 등 불법행위는 2013년(203건) 200건이 넘은 후 이듬해인 2014년(354건) 300건을 돌파했다.

2015년부터는 매년 400건이 넘는 기내 불법행위(2015년 460건, 2016년 455건, 2017년 438건)가 적발되는 등 갈수록 횟수가 늘고 있다. 올들어선 상반기에만 246건의 기내 불법행위가 발생했다.

술을 마신 후 기내에서 난동을 피우는 행위는 10건 안팎으로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고 성희롱과 같은 성적수치심 유발행위는 2015년 이후 해마다 15~17건에 달한다. 올 상반기에도 10건의 기내 성희롱 행위가 발생, 해당 불법행위자들이 경찰대에 인계됐다.

2011년 115건이었던 기내 흡연행위는 갈수록 증가해 △2014년 278건 △2015년 381건 △2016년 364건 △2017년 363건 등으로 집계됐다. 올 상반기에는 198건의 기내 흡연행위가 적발됐다.

◆ 테러에 버금가는 ‘기내 난동’… 처벌은 ‘솜방망이’
항공기는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엄청난 인명 손실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내 난동 역시 항공기 사고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은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기내 난동과 같은 불법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실제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 중국보다도 실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1. 2015년 1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술에 취해 승무원들을 폭행하고 포승줄에 묶인 채 침을 뱉고 욕설을 한 혐의로 기소된 B씨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2-2. 2016년 12월 미국의 팝가수 리차드 막스가 하노이발 인천행 대한항공 기내 난동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린 사건이 있었다. 술에 취해 옆자리에 앉은 승객의 얼굴을 때리는 등 2시간 가량 난동을 부리고 승무원들을 폭행한 C씨를 리차드 막스와 승객들이 제압, 착륙 후 현행범으로 경찰대에 넘겼다.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으나 집행유예(벌금 500만원, 사회봉사 200시간)에 그쳤다.

심지어 한국에선 외국인 기내 난동자에게도 관대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3. 2017년 3월 인천공항발 홍콩행 항공기를 탑승한 중국인 D씨는 좌석 문제로 승무원에게 욕설을 하는 등 난동을 부려 3시간 가량 출발시간을 지연시켰다. D씨는 공항경찰대에 넘겨졌으나 훈방조치됐다.


◆ 미국·호주, 실형 등 강력 처벌… 중국도 기내 난동 자국민에 '블랙리스트' 등록
이처럼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내리는 한국에 비해 미국이나 호주 등은 처벌 수위가 매우 높다. 강력한 처벌을 통해 재발을 방지한다는 재판부의 의지가 상대적으로 강한 것이다.

#4. 2016년 4월 부산에서 괌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여객기 내에서 술에 취해 담배를 피우다 승무원과 실랑이를 벌인 한국인 치과의사 E씨는 괌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됐다. 당시 현지 수사기관은 E씨에게 47일형을 구형했지만, 같은 해 말 열린 1심 재판부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냈으나, 법원은 E씨가 기내에서 벌인 행동이 얼마나 중대하고 심각했는지를 감안하면 기존 형량(3년)은 관대한 편이라며 다시 3년형을 선고했다.

미국 연방법은 기내 난동을 중범죄로 간주, 해당 승객에 대해 최대 20년 이하의 징역이나 25만달러(2억8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FBI(미국 연방수사국)가 직접 수사해 기소하고 괌에서 3년형을 받은 E씨처럼 법원도 쉽게 선처하지 않는다.

호주는 승무원 폭행이나 협박시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고 승무원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했다고 판단될 경우 최대 2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한다.

중국은 기내는 물론 해외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물의를 일으킨 자국민을 ‘여행 비문명 행위자 명단’인 블랙리스트에 등록, 일정기간 국내·외 여행은 물론 항공기 탑승을 불허하고 심지어 은행대출에 불이익을 주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 한국 정부, 처벌 수준 상향… 판결은 여전히 관대
기내 난동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3월 30일자로 항공보안법을 개정, 처분 수준을 상향 조치했다.

실제 안전운항을 저해하는 폭행이나 출입문 조작에 대해선 종전 5년 이하 징역을 10년 이하로 강화하고 기장 등의 업무 방해행위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을 각각 10년 이하 지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했다.

벌금 1000만원 이하였던 운항 중 폭언 등 소란행위나 음주 후 위해행위에 대해선 3년 이하 징역(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까지 가능하도록 개정했다.

보안검색 업무 방해 역시 기존에 1000만원 이하 벌금을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벌금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흡연행위나 성희롱과 같은 성적 수치심 유발행위에 대해서도 종전보다 각각 배 이상 벌금을 더 물리도록 했다.

그럼에도 실제 판결에선 징역형보다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항공업계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용원 국토부 항공보안과장은 “기내 난동에 대한 처벌 자체가 관련법(항공안전법)이 요구하는 만큼 나오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현재로선 항공사들에게 기내 폭행 등의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지도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내 불법행위가 발생할 경우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항공기내 보안요원과 함께 항공보안 감독관이나 보안검색 요원을 포함, 항공사법경찰대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전문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