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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법원 "세입자도 재개발 '이사비' 못받으면 집 안넘겨도 돼"

[the L] 인천지법 "이사비는 손실 보상금, 못 받으면 명도요구 거절 가능"…세입자 '이사비' 받을 권리 확인한 판결은 이례적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입력 : 2018.09.13 04:00|조회 : 6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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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서울의 한 재개발지역 전경 / 사진=민동훈 기자
2012년 서울의 한 재개발지역 전경 / 사진=민동훈 기자

재개발 조합원이 아닌 세입자라고 하더라도 이사비를 받지 못하면 재개발 조합에 집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세입자에 대해 주거이전비와 비교할 때 소액인 이사비를 받을 권리까지 확인한 판결은 이례적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민사11단독 오현석 판사는 이달 초 인천의 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이 세입자 A씨를 상대로 낸 건물명도(인도) 소송에서 "A씨는 부동산을 인도하라"며 조합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오 판사는 승소한 조합도 잘못이 있다며 통상 패소한 측이 전부 부담하는 소송비용을 각자 부담하라고 선고했다.

오 판사는 "이사비라는 손실보상이 완료되지 않은 때에 세입자는 종전대로 (주택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이사하고 나가라'는 명도요구에 맞서서 정당하게 거절할 수 있다"며 "조합의 소송비용은 A씨에 대한 이사비 공탁이 불필요하게 늦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조합은 지난 1월 A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이사비를 지급하거나 공탁하지 않다가 재판부가 공탁을 수차례 요구하자 변론 종결 직전인 8월이 돼서야 비로소 A씨를 상대로 이사비를 공탁했다. 이 판결에 대해 이날 현재까지 항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항소기한은 20일이다.

앞서 조합은 지난해 관할 구청장에게서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아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던 중이었다. 조합은 조합원이 아닌 세입자였던 A씨에게 "관리처분계획 인가로 조합이 부동산에 대한 사용수익권을 취득했다"며 "임대차 계약은 계약목적 달성 불능으로 당연히 종료됐으니 부동산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A씨는 "다른 곳에 주거지를 마련할 돈이 없고 이사 비용을 감당할 돈이 없다"며 "그 돈을 받아야 이사를 할 수 있다"고 버텼다. 주거이전에 필요한 비용을 뜻하는 '주거이전비'와 가재도구 등 세간 운반에 필요한 '이사비'를 받을 때까지 집을 떠나지 않겠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오 판사는 "재개발 사업 시행자가 조합원의 임차인 A씨로부터 정비구역 내 토지나 건축물을 인도받으려면 관리처분계획의 인가·고시만으로 부족하다"며 "협의 또는 재결 절차에 의해 결정되는 손실보상을 완료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주거자는 (사업 시행으로 인해) 주거마련과 이사 준비 등으로 돈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함으로써 당연히 재산권이라는 헌법상 기본권이 제한되는 것"이라며 "주거용 건물의 거주자가 보상받을 수 있는 주거이전비와 이사비는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손실의 보상이다. (조합은) 이러한 제한을 감수해야 하는 점유자에게 그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고 했다.

또 주거이전비와 이사비에 대해 "(조합이 이주민에게 줘야 할) 시혜적 성격의 금원이 아니다. 생활 보호를 위한 사회보장적 차원이라는 성격, 사업 추진을 원활하게 하려는 정책적 목적으로 지급되는 돈이라는 성격, 그리고 경제적 손실을 변상하는 금액이라는 성격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여러 성격을 함께 갖추고 있다고 해서 주거이전비 등이 손실보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조합은 "이사비 청구권은 A씨가 별도의 행정소송 절차를 통해 공법상 당사자 소송을 제기해 행사하는 것만 가능하고 (조합이 제기한) 이번 민사소송 절차에서 항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오 판사는 "A씨의 주장은 민사상 원고인 조합의 적극적 인도 청구에 대응하는 소극적 항변에 불과하다"며 "물론 적극적으로 (이사비를) 청구하려는 경우에는 공법상 당사자 소송을 거쳐야 하지만 이를 이유로 (방어적 목적의) 항변조차 못한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오 판사는 주택재개발 공람공고가 나온 이후에야 A씨가 해당 지역에 살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A씨가 주거이전비를 조합에 청구할 권리는 없다"면서도 "이사비의 경우는 (주거이전비와 달리) 거주 요건이 필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이종근 변호사(법무법인 대지)는 "세입자도 이사비 미지급을 이유로 부동산 명도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는 판결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세입자를 강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그동안엔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나오는 즉시 조합원이든 세입자든 당연히 퇴거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돼왔다"며 "특히 주거이전비가 아닌 이사비는 상대적으로 금액이 작아 따로 다툴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돼 소송 자체도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 대형 로펌의 건설 담당 파트너 변호사도 "정책적 목적으로는 세입자 등에 대한 두터운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공감한다"면서도 "현행 법령의 해석상 다소 무리한 해석이라고 지적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이번 판결이 세입자 등에 대한 두터운 보호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는 "지금껏 조합이 반대 조합원이나 세입자를 상대로 명도청구 소송을 하면 판사들 대부분이 '당장 인도하라'고 원고의 손을 들어줘 왔다"며 "주거이전비, 이사비 등에 대한 것은 피고가 행정소송을 제기해 해결할 일이지 민사소송에서 이에 맞서지 못한다고 막아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주거이전비와 이사비를 못 받았다면 세입자 등의 주택 점유는 정당한 점유인데도 심지어 불법 점유자로 몰리고 손해배상 또는 부당이득반환 등 책임을 지는 일도 있었다"며 "세입지 손을 들어준 판결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 "그간 법원이 세입자 등 피고가 별도 소송으로 이사비 문제를 해결하라고 내쳐 온 것도 잘못된 것"이라며 "민사·행정소송이 본질적으로 엄격하게 다르지 않은 데다 세입자 등이 항변조차 못하게 벽을 치고 별도로 소송을 제기하라고 하는 것은 세입자 등의 항변권을 영구박탈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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