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연인처럼 함께 손잡고”…文 ‘젊은 연인들’ 가사 인용했나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일 오후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평양=뉴스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남북정상회담 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가진 환영 만찬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정착이 중요한 의제”라며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려가겠다”고 말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모인 자리에 정교한 정치적 발언이 중요한 상황을 감안한 듯 ‘비핵화’, ‘평화정착’, ‘평화와 번영’ 같은 의례적 단어들이 동원됐다.

문 대통령은 연설을 이어가며 계속 신뢰와 우정을 얘기하며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연설이 끝나갈 때 즈음, 문 대통령은 문학적 수사에 해당하는 서정적 문구 한 줄을 빼놓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나는 다정한 연인처럼 함께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고 넘어왔던 사이”라는 말이 그것.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자신을 ‘다정한 연인’에 비유했고, ‘함께 손잡은’ 사이임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과 세 번째 만남이라고는 하나, 이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문구는 이 상황에 가장 ‘생경한 어울림’이었다. 공식 석상에선 낯설어 보이지만, 딱딱한 정치 용어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 듣는 이의 심장을 녹이는 이 낭만적 문구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데 ‘찡한’ 무엇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평양 목란관에서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건배사를 하고 있다. /(평양=뉴스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 대통령이 사용한 이 구절은 서울대트리오가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에 나가 동상을 받은 ‘젊은 연인들’의 한 소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잠깐 스치듯 이 구절을 썼지만, ‘젊은 연인들’의 가사를 더 들어보면 이 같은 인용의 가능성 있는 흔적은 확실한 듯하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길은 험하고 비바람 거세도 서로를 위하며/눈보라 속에도 손목을 꼭 잡고/따스한 온기를 나누리~’(‘젊은 연인들’ 가사 중에서)

가사 내용이 험한 길과 거센 비바람을 뚫고 서로의 손목을 꼭 잡고 나아가듯, 남과 북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뚫고 희망의 미래를 펼치자는 문 대통령의 의지와 그 맥락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다정한 연인처럼 함께 손잡고’라는 간명한 구절을 통해 노래 가사 뒷부분의 내용을 모두 전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서울대트리오. '젊은 연인들'이라는 노래로 동상을 받았다. 안경을 쓴 사람이 대연각화재로 숨진 민병무씨 동생 병호씨.

‘젊은 연인들’은 당시 아픔이 있는 스토리를 간직한 노래다. 1971년 대학에 입학한 민병무씨와 방희준씨는 자신들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로 호텔 공연을 한 뒤 출연료로 받은 숙박권으로 성탄절 날 생일파티를 마치고 투숙하다 화재사고로 참변을 당했다.

그 유명한 충무로 대연각호텔 화재사고다. 이 사고로 당시 160여 명이 사망했고, 대통령 헬기 등이 동원돼 진화하는 데 걸린 시간만 10시간이 넘었다.

고 민병무씨의 동생 병호씨는 우연히 형이 만든 악보를 발견하고 서울대에 입학한 뒤 친구들을 설득해 대학가요제에 나가 동상을 받았다.

사연은 다르지만 ‘젊은 연인들’에 숨겨진 아픔과 남북이 처한 현실의 아픔은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의 가능성 있는 ‘젊은 연인들’의 인용은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하는 가사의 마지막 구절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응축한 암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