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양]방북 경제인들 양묘장 방문…'산림협력'으로 경협 물꼬트나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경제인들이 18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와의 면담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경제인들이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남북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을 해치지 않도록 상호 수위조절을 하는 가운데 산림협력 등 제재와 무관한 분야에 대한 사업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에 따르면, 우리 경제인들은 정상회담 이틀째인 19일 오후 황해북도 송림시에 있는 조선인민군 112호 양묘장을 방문한다. 2016년 5월 준공된 곳으로, 산림녹화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재건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측이 우리 경제인들에게 김 위원장의 역점사업인 산림녹화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산림협력은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분야로, 남북은 이미 지난 7월 산림분과 회담에서 양묘장 현대화를 포함한 산림조성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정부가 지난 11일 국회에 제출한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비용추계서에는 산림협력 예산으로 1137억원이 배정됐다. 이번 정상회담 공식수행원에 김재현 산림청장이 포함된 가운데 남북 산림협력이 경협의 물꼬를 트는 시발점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동연 부총리, 장하성 정책실장이 이번 방북명단에서 빠진 것에서도 보이듯 당국간 경협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4대기업 총수를 보내 경협 행보를 보이며 북측을 달래고 있는 격"이라며 "산림협력은 안보리 제재에 걸리지 않는 분야이자 김정은의 역점사업"이라고 분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부터), 구광모 LG회장, 최태원 SK회장이 18일 오후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 참석해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경제인들은 이후 소학교 교사 등을 양성하는 평양 교원대학교를 방문한다. 북한의 높은 교육 수준을 보일 수 있는 곳으로, 최근 리모델링을 마쳐 외국인들의 평양 방문시 주요 방문 코스로 각광받는 곳이다. 저녁에는 평양 시민들이 자주 찾는 대동강 수산물시장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 및 다른 수행원들과 함께 식사할 예정이다. 평양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접해볼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 경제인들은 방북 첫날인 18일에 평양시 인민문화궁전에서 리룡남 북한 내각부총리와 만나 남북 경제협력에 대해 큰 틀에서 공감대를 다졌다. 구체적인 투자나 경협 계획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재계 1위인 삼성 이 부회장을 비롯한 재계 인사들과 북한 대외경제 협력을 총괄하는 리 부총리가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평양역 건너편 새로 지은 건물에 '과학중심 인재중심'이라고 쓰여 있더라"며 "삼성의 기본경영 철학이 '기술중심 인재중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한글로 그렇게 쓰여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이게 한민족이구나'라고 느꼈다. 이번 기회에 더 많이 알고, 신뢰관계를 쌓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이 두 번째 방북인 최 회장은 "2007년에 왔었는데 11년 만에 오니까 많은 발전이 있는 것 같다. 건물도 많이 높아졌지만 나무들도 많이 자라난 것 같고 상당히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구 회장도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과거 남북경협을 선도한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은 "남북관계가 안 좋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며 "빨리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과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각각 개성공단 재개와 철도연결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리 부총리도 뼈있는 발언을 했지만 전체적으로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리 부총리는 "이재용 선생은 보니까 여러 측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더라"며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서도 유명한 인물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의미심장한 덕담을 건넸다. 이 부회장은 웃으며 "알겠다"고 답했다. 또 남북 간 철도협력을 강조하며 "앞으로 일 년에 몇 번씩 와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으나 양측간 구체적인 약속이 오가진 않았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4대 그룹 총수를 북한의 경제 실무 총괄이 만난 사실만으로 북한 경제에 대한 대외 신인도가 급상승하는 것"이라며 "경제인들 사이에선 삼성이 북한에 투자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이재용 부회장의 이번 방북이 의미가 큰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