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선언과 협상의 계승,김정은 비공개 메시지 주목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남북정상회담 목표는 ‘긴장 완화와 구체적 비핵화 조치’였다. ‘9월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4·27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6·12 북미정상회담)를 ‘연결’하고 ‘계승’한다. 결국 종착지는 연내 종전 선언이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는 분명하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 간 군사합의서에 서명했다. 문 대통령은 “전쟁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고 선언했고 청와대는 “사실상 북한과 불가침 조약” “실질적 종전선언”이라고 자평했다.

비핵화의 경우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영구폐기 △영변 핵시설의 영구폐기를 명시했다. 미래 핵을 포기하고 현재의 안정을 요구해온 북한, 현재 핵을 포기해야 미래를 보장하겠는 미국 사이 중재이자 접점 찾기다.

◆정상회담의 ‘연결’ = 판문점과 싱가포르를 지나며 협상의 결과물이 구체화되는 흐름이다. 비핵화 문제만 봐도 판문점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싱가포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한 것에 이어 평양에선 아예 ‘핵시설의 영구폐기’를 담았다.

‘적대행위 중지’(판문점)가 ‘새로운 북미관계’(싱가포르)를 지나 ‘남북 불가침’(평양)으로 연결됐다. 특히 싱가포르에 이어 평양에서도 판문점 선언의 이행과 계승을 명시했다. ‘연내 종전선언·완전한 비핵화 달성’의 목표와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추진에 남북 경협 의지를 더한 것은 평가할 대목이다. 총론의 구체화 뿐 아니라 논의 수준을 높이고 범위를 넓혔다는 측면에서다.


연락사무소 개소와 미군 유해 송환 등의 초보 단계의 교류를 넘어 ‘연내 철도 착공’ 등을 명시할 수준이 됐다는 얘기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전까지는 추상적 선언의 의미가 있었는데 이번엔 방법론을 명시했다”며 “상당히 진전된 합의”라고 평가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도 “판문점 선언보다 진전된 합의였다”며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 비핵화 방안에 대해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비핵화 방안 합의…‘현재 핵’을 꺼낸 北 = ‘9월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비핵화 방안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설 폐쇄를 대가로 미국이 종전선언을 해주면 ‘현재핵’까지 폐기하겠다는 내용이다. 남북한 첫 비핵화 합의인데 분명한 성과다.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폐기한다’는 건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ICBM 발사장을 없앤다는 의미다. 종전선언을 줄 만한 ‘선행조건’이 불충분하다는 미국 내 비난 여론을 완화시킬 수 있는 카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선언’을 허용해 줄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 준다.

여기에 북한은 ‘유관국 전문가 참관’ 이라는 단서도 달았다. 사찰이나 검증 등 제3자의 확인을 약속한 것이다. 동시에 남북은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와 같은 추가적 조치도 취하기로 했다. 미국의 상응 조치란 ‘종전선언’으로 해석된다. 올해 경제 총집중 노선을 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내적으로 안보 위협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줘야 하는데 종전선언은 최소의 보증서 격이다. 즉 미국이 종전선언을 해줘 북한 체제보장의 첫 단추가 끼워지면 영변 핵시설을 영원히 없애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제안이다.

특히 북한 핵의 핵심인 영변 핵시설을 폐기한다는 것은 북한이 처음으로 ‘현재핵’ 폐기를 거론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북측이 지금까지 일련의 비핵화 조치를 취해 왔지만 ‘미래핵’에 국한됐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발 더 나간 것으로 풀이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ICBM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완화하고 처음으로 현재 핵 폐기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며 “비공개 된 핵신고 등에 대해 미국과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내에 종전선언과 북측의 비핵화 조치 간 ‘빅딜’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셈이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관계에서 중재안으로 부상한 ‘동시교환’을 의미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미국은 항상 북측에 ‘선 신고사찰, 후 종전선언’, 북측은 ‘선 종전선언, 후 신고사찰’를 주장하면서 교착상태가 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북미·남북미 이어진다 = 문 대통령은 ‘합의문’과 ‘구두 합의’ 등을 들고 미국으로 간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으로 가는 문 대통령은 오는 24일(미국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갖는다. 김 위원장과 ‘합의’한 비핵화 방안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또한번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미국 행 보따리에는 ‘평양공동선언’ 외 적잖은 게 담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공동선언 내용 이외에도 (비핵화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이러한 논의의 결과를 토대로 내주 초 뉴욕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는 방안들에 관해서 양 정상 간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비공개 협의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을 종전선언으로 유인할 수 있는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에 대해 남북이 구두 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나온다. 문 특보는 “분명히 선언문에 담지 못한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그것을 트럼프 대통령에 직접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 “김정은 위원장이 핵 사찰(inspection)에 합의했다”고 밝힌 게 눈길을 끈다. 핵 사찰은 핵 리스트 제출로 이어질 수 있는 조치다. 미국이 종전선언 전 선행조치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신고 리스트 제출’ 규모 등도 논의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핵 신고와 관련한 비공개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며 “핵 신고 규모 등이 관건으로 앞으로 이 부분은 미국과 논의로 구체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홍민 연구위원은 “비핵화 논의와 관련해 비공개된 버전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핵신고 등이 포함된 비핵화 시간표가 마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물꼬도 터줘야 한다. 한미정상회담이 잘 마무리되면 미뤄졌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다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 특보는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 방문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2차 북미정상회담 착수를 의미한다. 연내 종전선언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한미정상회담, 2차 북미정상회담, 서울 남북정상회담, 남북미 정상회담 등의 일정이 숨가쁘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