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미뤄, 수술 잡아…명절 며느리 '병원 활용법'

임종철 디자인기자

결혼 13년차 주부 이모씨(45)는 지난해 11월 요실금(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게 소변이 유출되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이씨는 올해 1월 말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가 의사에게 부탁해 설 연휴 전날로 미뤘다. 이씨는 "명절 때 시댁에서 집안일을 하면 고생을 너무 많이 한다"며 의사에게 사정했다.


오랫동안 시월드(시댁과 월드를 합친 신조어)에 시달린 며느리들 가운데 일부러 핑계를 만들어 시댁을 가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하다.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남편과 싸우느니 차라리 병실이나 회사를 택하는 것이다.

실제 명절만 되면 병원에는 수술 날짜를 명절 연휴에 맞춰달라는 기혼 여성 환자들이 늘어난다. 서울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전모씨(35)는 "축농증, 요실금 등 응급 수술이 아닌 경우 명절 연휴로 수술 날짜를 바꿔 달라는 환자들이 있다"며 "명절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면서 바꿔 달라고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미뤄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이모씨(45)는 "세 달 전에 이미 이달 20일로 자궁 수술 날짜를 잡은 한 주부가 있었는데 수술을 나흘 앞두고 추석 연휴로 연기해 달라고 했다"며 "명절만 되면 시댁에 시달리기 싫은 주부들의 요구사항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기존에 입원해 있던 환자 중에는 퇴원 날짜를 연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혼 10년차 직장인 김모씨(39)는 이달 14일 택시를 탔다가 접촉사고를 당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목과 허리가 아파 입원했다. 담당 의사가 19일 퇴원해도 좋다고 했지만 김씨는 퇴원을 일주일 미뤘다. 김씨는 "지금 퇴원하면 설거지 해야 하는데 한 번만 봐달라며 의사에게 부탁해 겨우 연기했다"고 말했다.


회사에서는 명절 당일 당직근무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간호사나 고객센터 등 여성 비율이 높은 직장에서 일어난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수간호사(여·50)는 "명절에 근무를 세워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근무표를 짜기 힘들 때도 많다"며 "예전에는 명절 근무에 누가 서야 하나 눈치를 봤는데 이제는 지원자가 꽤 있어 크게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병원에 입원하거나 당직을 선다고 얘기해도 시월드 스트레스가 아예 없진 않다. 큰 마음 먹고 시어머니에게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건 핀잔과 잔소리다. 결혼 3년차 이모씨(35)는 "당직에 걸려서 어쩔 수 없이 못 내려 간다고 남편에게 말했는데 다음날 시어머니가 바로 전화했다"며 "당직 하나 제대로 못 바꾸냐고 하면서 잔소리를 하시는데 화가 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올해 병실에서 설을 보낸 결혼 7년차 주부 김모씨(38)는 "괜찮냐고 물어보시는 시어머니의 말투에 걱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며 "혼자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얘기를 하는데 아파도 이해해 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댁 스트레스를 무조건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갈등이 일어났을 때 피하기만 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같이 여행을 간다거나 제사를 간소화하는 등 가족들이 모여서 서로 원하는 것들을 얘기하고 풀어가는 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