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 vs 유주택, 양분된 부동산 민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다주택자 세부담 확실히 늘리고, 기준금리 올려서 집값 떨어뜨려야 무주택자들이 집을 사죠” “집값이 너무 올라서 대출받아 집 산게 죄가 되나요”

종합부동산세 및 주택대출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9·13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무주택자들은 정부 규제에도 연일 치솟는 집값이, 유주택자들은 정부의 규제 일변도 대책이 불만이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두 달에 한번 꼴로 대책을 내놨지만 부동산 시장이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전개되면서 무주택자와 유주택자간 갈등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심지어 가족이나 친지 모임에서 집값 얘기를 하다가 의견 차이로 다투는 사례도 나타난다.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대학 동기 모임에서 “지난해 입주한 아파트값이 3억원 올랐다”고 말했다가 무주택 동기들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A씨가 “대출 원리금도 부담되는데 당장 팔기도 어려운 집에 세금이 과도하게 붙는 것 같다”고 푸념하자, 한 동기는 “집값 오른 것에 비하면 큰 부담은 아니지 않냐”고 몰아세웠다.

대출을 끌어 내집을 마련한 1주택자들은 자신을 투기꾼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다. 최근 매매가 8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한 50대 자영업자 B씨는 “집 절반이 은행 빚이고 원금에 이자까지 갚으려면 빠듯한데 정부는 이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정책을 짜는 것 같다”고 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집값이 떨어지는 정책을 원하지만, 집값이 더 오를까 두려워 늦게나마 집을 산 사람들의 생각은 정반대다. 중요 부동산 정책 발표를 앞두고 민심이 갈리는 현상도 이런 분위기와 맥이 닿아 있다.

실제로 이번 공급대책 발표에 앞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용산미군기지 활용 △도심 고밀도개발 등 중요 현안에서도 수요자 본인의 거주형태에 따라 각자 의견이 갈렸다. 무주택자들은 주로 임대주택 공급을 희망하나, 집값 하락과 난개발을 우려하는 유주택자들은 공급 확대 정책에 반감을 표한다.

이런 현상은 정부 정책이 ‘실수요자와 투기세력’으로만 시장 참여자를 구분 짓는 ‘이분법 프레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모든 다주택자가 갭투자로 수십 채를 보유한 것도 아니고, 1~2주택자도 거주 여건에 따라 언제든 실수요자 입장이 될 수 있다”며 “정책을 구상할 때 너무 극단적인 상황만 가정하지 말고 중립적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동산 정보의 유통·확산 속도가 워낙 빨라 예전처럼 정부 규제로 시장을 압도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부가 대책을 너무 자주 발표하면 수요자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내성이 쌓이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흩어진 부동산 민심을 다독이고 집값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선 정부가 시장 상황을 보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정책 발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