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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마르딘에서 장 구경을 하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8.09.2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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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업으로 그릇을 만들고 있는 공방./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수작업으로 그릇을 만들고 있는 공방./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여행의 재미를 언급할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어느 도시에 가든 가장 마음을 당기는 건 역시 장 구경이다. 남동부 아나톨리아의 끝자락 마르딘에서 구시가지 골목길을 섭렵한 다음 날 인근에 있는 오래된 시장을 찾았다.

외부 세상과 왕래가 적은 지역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마르딘에서도 장 구경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손님도 별로 없고 무료하던 참에 이게 웬 구경거리? 커다란 카메라를 앞세우고 난데없이 나타난 동양인에 골목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구경을 하려고 찾아간 내가 구경거리가 된 셈이었다. 관광객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곳인데다가, 나 같은 동양인은 더욱 귀한 곳이라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의자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는 사람, 아예 구경하는 나를 졸졸 따라오는 사람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이 나라 사람들 호기심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시장 끄트머리쯤에서 발견한 만물가게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말 그대로 없는 게 없었다. 시계, 도자기, 악마의 눈이라 부르는 나자르본주, 설탕그릇, 커피 잔, 보석함…. 특히 관심을 끄는 건 각종 냄비와 프라이팬 등 구리 제품이었다. 화려한 문양을 자랑하는 주석 제품도 많았다. 마르딘은 구리나 주석으로 그릇을 만드는 수제품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가게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땅땅땅~ 쇠 아우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향의 대장간이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 근처에 그릇을 만드는 공방이 있는 모양이었다. 소리를 따라 골목을 한참 내려가다가 한 남자가 앉아서 냄비를 만들고 있는 허름한 공방을 만났다. 말을 나누다보니 자신은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을 이어받았는데 아버지는 사람 키보다 더 높은 그릇도 손으로 만들었다고 자랑이 늘어졌다. 게다가 자기는 사우디아라비아에까지 물건이 팔려나가는 이름난 공예가란다. 동네에 수제 그릇을 만드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벌이가 안 되는 바람에 대부분 그만두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곳에도 전통산업에 드리운 그림자는 두터웠다.

과일‧채소가게 풍경./사진=이호준 여행작가
과일‧채소가게 풍경./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시장을 되짚어 올라오다가 또 이곳저곳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전통의상 가게를 지키던 남자가 무조건 손을 잡아끌고 들어가더니 아랍 식 터번을 둘러줬다. 이거 뭐야? 사라는 거야? 선물을 주겠다는 거야?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상술이라는 게 들여다보였다. 터번에 관심을 보이자 한 술 더 떠서 바지도 갈아입어보라고 권했다. 승마복처럼 무릎 아래가 좁고 엉덩이 쪽이 펑퍼짐한 전통 바지다. 원래 이름은 바기(baggy)인데 우리의 바지와 이름이 비슷하다. 탈의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픈된 공간에서 바지를 갈아입을 수야 없지. 살 생각은 더욱 없고….

옷가게에 들렀다 나온 게 문제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자신들도 보고 가라고 난리가 났다. 정말 쾌활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토마토, 당근, 고추, 양배추, 마늘, 오렌지 등이 푸짐하게 진열된 과일가게를 지나 골목길을 올라가다가 오래된 빵집을 만났다. 새로운 걸 만나면 직접 부딪쳐보는 게 기록자가 할 일. 출출하기도 했던 참이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가게는 정신없이 바빴다. 그 집은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빵집이었다. 시골에서는 직접 빵을 만들어 먹지만 도시에서는 배달을 시키거나 사다 먹는다. 남자 둘은 빵을 구워내고 아이들은 전화를 받거나 배달을 나가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주인은 나를 보더니 바쁜 와중에도 방금 구워낸 빵을 맛보라고 자꾸 권했다. 사양할 내가 아니지. 여행자는 염치 따위는 배낭에 넣어두어야 한다.

150년 된 빵집. 형제가 사이좋게 빵을 굽고 있다./사진=이호준 여행작가
150년 된 빵집. 형제가 사이좋게 빵을 굽고 있다./사진=이호준 여행작가
그 가게에서 주로 구워내는 건 나와실이라는 이름의, 그곳 사람들이 주식으로 하는 빵이었다. 손으로 찢어 양념된 채소와 함께 먹는다. 놀라운 사실은 이 허름한 빵집이 무려 150년이나 됐다는 것. 5대에 걸쳐 내리물림 했는데 형제가 공동 운영하고 있단다. 형은 35세, 동생은 25세. 형이 반죽으로 빵을 빚으면 동생이 즉각 구워냈다. 손놀림에 어찌나 빠르고 정확한지, '신의 손'이란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빵을 만들어놓고 팔기도 하지만, 소비자 입맛에 맞게 주문생산도 가능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빵에 생선을 넣어서 구워 달라, 양파를 넣어 달라… 하는 식이다.

바쁜 와중에도 주인 형제는 자신들의 빵집에 대해 설명을 더 못해줘서 안달이었다. 심지어 가족사까지 털어놓았다. 자신들은 이복형제란다. 아버지는 두 명의 부인을 얻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무려 30명의 자식을 두었다. 첫 번째 부인이 12명, 두 번째 부인이 18명. 한 여자가 18명의 자식을 낳으려면 대체…. 스물다섯 살에 낳기 시작해서 해마다 하나씩 생산해도 마흔 셋까지. 다행스러운 건 그렇게 형제들이 많아도 가족들 간의 마찰은 없단다. 하긴 이복형제가 함께 일하고, 또 그런 얘기를 자랑처럼 하는 걸 보면 그곳에서는 아내가 몇이든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날 장구경은 그 빵집에서 끝났다. 물론 만족스런 하루였다. 보여줄 준비 같은 걸 하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을 만나서 좋고, 그들의 삶을 가감 없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뒷골목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할 수 있는 나는 여전히 행운 넘치는 여행자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마르딘에서 장 구경을 하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9월 28일 (19:02)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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