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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거사위 "박종철 고문치사, 정권외압에 졸속·부실수사"

당시 청와대·안기부 등 개입…"정권안정 우선" 검찰 교육과정에 반영·제도 및 대책 수립 권고

뉴스1 제공 |입력 : 2018.10.1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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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종철 열사. © News1
故 박종철 열사. © News1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재조사를 통해 당시 검찰 수사가 청와대 및 안기부 등의 외압에 의해 정권 안정을 우선 고려한 졸속·부실수사였다고 결론냈다.

과거사위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보고받아 심의한 끝에 이같이 판단했다며 해당 수사사례를 현직 검사·수사관 및 신규임용자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업적 소명의식을 정립할 수 있는 제도와 대책을 수립하도록 11일 권고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전두환정권의 말기인 1987년 1월14일 오전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대공수사2단 소속 경찰관 5명으로부터 수사를 받던 대학생 박씨가 물고문으로 인해 질식사하자 사망원인을 조작하는 등 사건 은폐를 시도하고 고문치사의 범인을 2명으로 축소·조작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숨졌다고 공개적으로 발표, 국민의 분노를 샀다.

앞서 과거사위는 이 사건을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 및 공소제기를 하지 않거나 현저히 지연시킨 의혹 사건'으로 판단, 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했고 대검 진상조사단을 통해 재조사를 진행해왔다.

과거사위는 조사에서 당시 검찰이 박씨 사망 이틀 뒤 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을 정확히 파악, 초기에는 대공분실에서 주검을 처음 본 의사를 조사하는 등 내사에 착수하며 직접 수사를 계획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3일 후 검찰총장이 국가안전기획부장·법무부장관·내무부장관·치안본부장 등이 참석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다녀온 뒤 직접 수사가 중단되고 치안본부가 수사를 담당하게 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치안본부 소속 경찰관들이 서울지검 공안2부장을 찾아가 사체를 화장할 수 있도록 지휘해달라고 요구하고, 부검 직후 치안본부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부검결과에서 가혹행위나 고문으로 사망했다고 인정될만한 소견은 제외하고 발표하는 등 치안본부의 진상규명 의지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과거사위는 "관계기관대책회의 결정에 굴복, 치안본부에 수사를 일임함으로써 사실상 사건 축소 및 은폐조작 기회를 제공한 결과가 됐다"며 "검찰이 직접수사 방침을 변경해 조기에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는데 실패, 결과적으로 2차·3차 수사가 이어지는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당시 여론을 조기에 무마하기 위해 검찰의 수사를 단기간에 종료하라는 검찰 지휘부의 지시, 관계기관대책회의 결정에 따라 처음부터 사건을 신속하게 조용히 마무리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을 투입하고 수사기간을 짧게 설정한 정황도 파악됐다.

◇수사초기 피의자 2명으로 확정…공범조사는 비켜나

같은해 1월19일 '고문치사 사건 수사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처음부터 피의자는 2명으로 확정돼있었으며 공범 조사는 수사의 초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피의자 2명에 대해서도 각기 2회 조사만 이뤄졌고, 단 2명의 검사가 하루에 피의자 포함, 총 5명을 모두 조사했는데 그마저도 추가공범의 존재나 상관의 지시·관여에 대한 추궁은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월27일 무렵 이미 구속된 고문경찰관 2명으로부터 추가공범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즉각 수사하지 않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이를 폭로하기까지 3개월간 착수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피의자 추가 구속시에는 검찰이 추가공범 존재를 인지한 시점을 5월 초순경인 것처럼 기재해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지검장 "사제단에서 추가공범 발표해 오히려 속이 후련"회고

당시 서울지검장이었던 정구영 변호사는 진상조사단과의 지난 8월 면담 과정에서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너무 재촉하지 말고 좀 참아가며 해달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듣고 '청와대의 뜻'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검찰총장은 자꾸 '일주일만 있다가 하자'고 했고 일주일 있으면 또 일주일, 일주일하며 세월이 흘러갔다"며 "기자들도 범인 이름은 정확히 모르지만 '이거 몇 명 더 있는데' 정도는 대충 알고 있어 당시 잠이 안 올 정도였는데, 그러던 중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발표해주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문무일 검찰총장이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을 찾아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 씨의 손을 잡으며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 2018.3.20/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지난 3월 문무일 검찰총장이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을 찾아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 씨의 손을 잡으며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 2018.3.20/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아울러 과거사위는 당시 고문치사에 직접 가담한 피의자의 참여없이 현장검증을 했고, 박씨가 사망한 장소인 대공분실 9호실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돼 있었음에도 작동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는 등 검찰이 치안본부의 송치 후 적극 수사하지 않은채 졸속으로 사건을 종결하고 쫓기듯 기소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수사 초기 대공분실에 있었던 CCTV의 작동 여부, 시청자 유무를 직접 확인해 조사했다면 대공5차장 등을 범인도피죄가 아닌 고문치사의 공범으로 의율할 수도 있었으나 수사지연 및 직무유기로 인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봤다.

과거사위는 "장기간의 수사 착수 지연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한 청와대, 대통령의 영향 및 지시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검찰이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인권보장보다는 신속하고 조용히 기소함으로써 치안본부의 진상 은폐를 사실상 묵인하고, 여론을 잠재워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고려를 우선해 사건을 처리한 것"이라 말했다.

◇검찰, 직무유기와 함께 치안본부의 범인은닉 적극 방조

아울러 "이와 같은 검찰의 장기간 수사 착수 지연은 검찰이 그 직무를 유기한 것은 물론, 추가 공범에 대한 수사착수를 의도적으로 지연함으로써 치안본부가 은폐공작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적극 협조한 결과가 됐으며 치안본부의 범인은닉을 적극 방조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치안본부 대공5차장은 당시 구속된 고문경찰관 2명이 심경의 변화로 추가 공범을 밝히려 하자, 특별관리 하던 자금에서 2억 원을 인출해 고문경찰관 각기 명의로 5000만 원짜리 2개의 예금계좌를 만든 후 고문경찰관들을 찾아가 통장을 보여주면서 진실을 밝히지 말도록 회유하기도 했다. 그 가족들도 치안본부장 및 간부들로부터 위로금, 생활비, 이사비용 등을 지원받는 등 총 2억원이 사용됐다.

이후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같은해 5월29일 대공5차장 등 3명을 범인도피죄로 구속한 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고문경찰관 등의 금품수수 사실을 밝혔는데, 별도로 업무상횡령죄나 국고손실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고 그 배경에 관계기관대책회의 등 윗선 개입 의혹이 제기됐지만 적극 수사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고문치사사실과 가담자 인적사항을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사인을 '쇼크사'로 허위 발표하고 은폐하려 했던 치안본부장에 대해서도 검찰은 범인도피죄 의율 가능성 등을 적극 검토하고 수사에 착수해야 했으나 수사결과 발표에서 '치안본부장이 범인 축소·조작 사실을 몰랐던 것 같고, 직접 사건의 축소·조작에 가담한 혐의가 전혀 없다'는 취지로 발표하는 등 부실수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과거사위는 "사건 발생 초기 검찰이 치안본부의 조작·은폐 시도를 막고 부검을 지휘해 사인이 물고문으로 인한 질식사임을 밝혀낸 점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면서도 "그러나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보호 의무를 방기하고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조작할 기회를 주고 치안본부 간부들의 범인도피 행위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수사 초기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는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해 검찰총장 이하 검찰지휘부에 전달되는 청와대 및 안기부의 외압에 굴복해 졸속·늦장·부실수사로 점철됐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총평했다.

아울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 과정에 나타난 검찰의 과오에 대해서 통렬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검찰총장이 피해자의 유족을 직접 찾아가 검찰의 과오에 대해 사죄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덧붙였다.

과거사위는 이같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Δ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포함해 검찰의 잘못된 수사 사례·모범적 수사 사례를 대비해 원인·문제점·대응방안을 현직 검사·수사관 또는 신규 임용자 교육 과정에 반영할 것 Δ이 사건 검찰 수사 문제점을 소상히 알릴 것 Δ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개개인의 직업적 소명의식 정립을 위한 제도 및 대책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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