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켜는 금융그룹 데이터 공유

금융그룹 계열사간 데이터 공유가 가속화되고 있다. KB금융그룹은 7개 계열사 고객정보가 모두 담긴 신용평가시스템을 개발해 영업에 활용한다. 신한금융도 4개 계열사의 신용대출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정부도 카드 정보 유출 사태 이후 높아졌던 정보 공유의 ‘벽’을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KB금융은 은행·증권·손해보험·카드·생명보험·캐피탈·저축은행 등 7개 계열사 개인고객의 금융상품 거래, 상환, 연체 등의 정보를 모두 활용한 ‘그룹 통합 소매 신용평가시스템’ 개발을 완료했다고 15일 밝혔다.

국민카드와 KB저축은행은 이날 곧바로 통합 신용평가시스템 활용을 시작했다. 국민은행과 KB캐피탈은 다음달부터 활용한다. 새로운 평가시스템이 이용되면 중·저신용 고객군에 대한 평가가 이전보다 정교해진다는 게 KB금융의 설명이다.

예컨대 고객 A씨가 지금까지 신용등급이 낮아 국민은행에서 중금리대출 신청이 거절당했다면 앞으로는 KB저축은행 대출을 이용하면서 성실하게 상환하거나 국민카드의 신용카드 대금을 기일마다 꼬박꼬박 상환한 기록이 존재할 경우 국민은행 중금리대출 역시 승인 가능성이 높아진다.

KB금융은 통합 신용평가시스템에 계열사 정보는 물론 외부 신용평가사가 보유한 빅데이터도 함께 적용해 신용평가 근거가 부족한 이른바 ‘신파일러(Thin filer)’의 불이익을 해소했다. 금융거래 경험이 전무한 사회초년생이 첫 거래시 무조건 5등급 이하의 중·저신용자로 취급받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2014년 카드 정보 유출 사태의 여파로 금융지주회사법은 금융지주사와 자회사도 고객 동의 없이는 영업 목적의 정보 공유를 금지해 왔다. 반면 위험관리와 내부통제 등 ‘내부경영관리 목적’으로는 고객 동의 없이도 고객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KB금융의 통합 신용평가모델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 지주사와 계열사간 정보공유의 사례로 볼 수 있다.

KB금융 자회사 관계자는 “국민은행 거래 기록만으로는 볼 수 없었던 카드 상환 기록, 보험료 납부 기록 등이 더해져 개인고객의 신용도를 좀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늘어나는 것”이라며 “이는 위험관리 목적이기 때문에 영업 목적의 정보 공유를 금지하는 현행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룹 측면에서 비제도권 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는 중·저신용 고객을 고객으로 묶어둘 수 있고 고객 역시 제도권 내 추가 대출한도를 늘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이미 지난 7월 은행·카드·생명·저축은행 등 4개 계열사의 비대면 신용대출 서비스를 한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스마트대출마당’을 출시했다. NH농협금융은 지난해부터 △카드 부문 가맹점 정보와 매출전표 △콜센터 상담 이력 △비대면 채널 이용 현황 등 데이터를 통합하는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금융지주사 내 정보 공유를 확대하기 위해 ‘사전동의제’를 ‘사후거부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시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지주사들이 정보보안 체계와 정보위험관리 지배구조 개선에 노력하면서 금융당국도 제약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아직 변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처럼 사후거부 방식으로 전환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