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법에 무용지물 'CEO조합장'...국토부는 허점 알지도 못해

@임종철 디자인기자

투명한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을 위해 정부가 도입한 ‘CEO조합장’ 제도가 국토교통부의 허술한 법 개정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CEO조합장을 영입할 수 있게 관련법이 개정됐지만 같은 법 시행령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정식 조합장으로 선임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8일 서울시에 따르면 마포구청은 지난해 5월 ‘아현제4주택재개발정비사업’(이하 아현4구역) 조합의 전문조합관리인 공모를 실시해 김진규씨를 전문조합관리인으로 선정했다. 서울의 정비사업장 중 전문조합관리인이 선정된 사례는 아현4구역이 처음이다.
　
전문조합관리인 제도란 조합원이 아닌 외부의 정비사업 전문가가 조합의 임원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CEO(최고경영자)처럼 전문적으로 조합을 운영하는 사람을 외부로부터 영입해 조합의 전문성을 높이고 각종 비리를 막겠다는 취지다.
　
국토부가 2015년 9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2016년 1월 법이 통과하면서 제도가 도입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조합 임원이 해임 사임 등의 이유로 6개월 이상 공석인 경우 시·군·구청장은 변호사, 회계사, 법무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자를 전문조합관리인으로 선정할 수 있다.
　
아현4구역 조합은 제도 도입 후 처음으로 전문조합장을 선정했지만 법인등기상 아현4구역의 조합장은 여전히 전 조합장으로 돼 있다. 조합장 변경 신고를 위해 지난해 7월 서울서부지법에 제출한 특수법인변경등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원은 “도정법상 전문조합관리인은 법령에 등기사항으로 규정되지 않았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전문조합장을 선임할 수 있도록 도정법이 개정됐음에도 같은 법 시행령에 규정사항이 없어 등기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도정법 시행령 36조에는 조합의 등기사항으로 △설립목적 △조합명칭 △사무소 소재지 △설립인가일 △임원의 성명 및 주소 등을 명시했으나 전문조합관리인은 명시돼 있지 않다.
　
조합장은 등기가 되지 않으면 법인(조합)의 대표로서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현재 아현4구역은 김 전문조합관리인이 업무를 보고 있는데 등기상 법인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계약업무 등은 수행할 수 없는 상태다.


제도상 허점이 있음에도 국토부는 이같은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과 올 2월 2차례에 걸쳐 국토부에 도정법 시행령 개정을 요청했지만 국토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외부 조합장에 대한 거부감으로 전문조합관리인을 영입하려는 사업장이 거의 없는 실정인데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니 제도 정착이 더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도정법상 전문조합관리인의 등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개정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