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대비하자"…생필품 사재기하는 영국인들

/AFPBBNews=뉴스1

영국에 거주하는 네빈 만(36)씨의 집은 긴급 피난처를 떠오르게 한다. 찬장은 파스타, 쌀, 그리고 쿠스쿠스(좁쌀 모양의 파스타)로 가득 차있다. 가족이 5~6주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의약품은 플라스틱 통을 꽉 채웠고, 정원에는 약 1100리터짜리 물탱크가 들어섰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만씨처럼 내년 3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앞두고 음식과 휴지 등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브렉시트 준비족'(Brexit Preppers)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인들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선 이유는 브렉시트 후 영국 파운드화 가치 하락으로 말미암은 물가 상승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식료품의 3분의 1을 유럽연합(EU)에서 수입할뿐더러 기업 대부분이 EU를 통하는 복잡한 공급망을 갖고 있어 100% 영국에서 조달 가능한 제품을 찾기 힘들 정도이다.

'48%의 준비족'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비공개그룹 회원 수는 1300명이 넘었다. 48%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 반대표를 던진 유권자를 뜻한다. 이 그룹은 "가능한 많은 사람이 브렉시트가 가져올 (부정적인) 결과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함께 준비하자'라는 제목의 짧은 안내서도 온라인상에서 공유되고 있다. 이 안내서는 전직 경찰관이자 현직 증권 컨설턴트인 제임스 패트릭이 작성한 것으로 브렉시트 후 사회 혼란 상황에 대한 경고와 비상 상황 시 대피요령, 그리고 브렉시트 전에 갖춰야 할 물품 목록 등을 다루고 있다.


기업들도 비상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3일 영국 최대 유통업체인 테스코의 데이브 루이스 최고경영자(CEO)도 노 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건조식품을 비축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제약회사들도 정부 권고에 따라 6주 분량의 의약품을 비축해둔 상태다.

영국과 유럽연합 간의 브렉시트 협상이 장기화하면서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경우 EU 육로와 해상로가 차단되고 에너지 공급 불안으로 공장 가동에 차질이 발생해 생필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식품 부문에서만 연 93억파운드(약 13조5800억원)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안 라이트 영국 식음료협회장은 "아직 (사재기로 인한) 공급 부족 문제는 없다"면서도 "다음 달까지도 브렉시트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재기 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