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아닌 주체적인 여성"…25년만에 재탄생한 발레 '마타 하리'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진행한 국립발레단 정기공연 '마타 하리' 간담회에서 안무를 맡은 레나토 자넬라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뉴스1

20세기 최고의 미녀 스파이라 불린 실존 인물 '마타 하리'.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를 오간 이중 스파이 혐의로 1917년 10월15일 총살 당한다. 그녀는 진짜 스파이였을까. 오는 31일부터 시작되는 국립발레단 176회 정기공연 '마타 하리'에서 스파이란 오명의 베일이 걷히고 격정의 시대에도 자유와 사랑을 갈망했던 한 여성의 인생을 그린다.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마타 하리'의 안무를 담당한 레나토 자넬라는 "마타 하리에 대해 많이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제대로 알고 있는 건 없다"며 "이번 공연은 여성해방과 자유를 갈망하고 자기 삶을 사랑했던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발레 '마타 하리'는 199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초연한 바 있다. 당시 초연작 안무가가 바로 자넬라다. 현재 국립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강수진 예술감독은 당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소속으로 '마타 하리' 주역을 맡았다. 25년 만에 안무가와 예술감독으로 다시 만나 완전히 새로운 '마타 하리'를 탄생시켰다.

자넬라는 "강수진 감독이 '마타 하리' 재공연을 제안하며 내건 조건은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며 "지난해 12월 국립발레단 공연을 보고, 지난 2월 다시 한국에 와서 단원들을 직접 만나며 이들에게서 받은 영감으로 오직 국립발레단만을 위한 새로운 안무를 짰다"고 말했다. 음악도 85% 정도 새롭게 구성했다.

지난해 마타 하리가 죽은 지 100년 되는 해를 맞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많은 자료들이 쏟아져나왔다. 마타 하리와 평생을 함께한 유모의 일기장, 친구와 주고 받은 손편지, 무용수로서의 활약상 등에 관한 자료가 공개됐다. 자넬라는 "1993년 작품은 마타 하리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고, 이번 작품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그녀가 스파이 의혹을 받은 불운한 여성이었다는 부분보다는 무용수를 꿈꿨던 한 여성의 삶을 조명하는 데 역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국립발레단 정기공연 '마타 하리' 오픈 리허설 장면./사진제공=국립발레단

작품을 준비하면서 연구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마타 하리가 실제로 입었던 옷을 고증해 총 11벌의 의상을 재현했다. 사형 당하던 전날 밤을 첫 장면으로 시작, 마타 하리가 죽기 전에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총 2막으로 구성했다. 무대 효과는 최대한 가벼운 소재감을 살리려 했다. 자넬라는 "강렬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마타 하리의 기억이기 때문에 흩날리는 것을 연출하고 싶었다"라며 "최대한 사실에 충실하려고 했고 현실적인 상황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자넬라는 새롭게 공개된 자료들을 접하면서 마타 하리에 대해 좀더 깊이 알게 됐다. 그는 "마타 하리는 여성 인권이 향상된 지금과 달리 남성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여성해방을 외쳤던 여인"이라며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고 사회에 의해 파멸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주체적인 여성이 되길 갈망한 마타 하리의 사랑과 증오, 발레리나의 꿈에 대한 열정을 그린 '마타 하리'는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마타 하리 역에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박슬기·신승원이 출연한다.

국립발레단 정기공연 '마타 하리' 오픈 리허설 장면./사진제공=국립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