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쓴다… 교황의 '첫 방문' 史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로마 바티칸 교황궁 교황 집무실 앞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교황은 이번에도 새 역사를 남길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역대 교황이 처음 방문한 국가들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정오 바티칸 교황궁(사도궁)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독대를 가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하는 문 대통령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께서 전한 말씀으로도 충분하지만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며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말해 사실상 방북을 수락했다.


교황의 방문은 방문 국가와 주변 지역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교황은 약 13억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서구 세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세속의 교황'으로 불리는 UN 사무총장이나 영연방의 상징적 수장인 영국 여왕도 교황의 권위에는 크게 못 미친다.

1979년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사진=위키피디아

교황 방문은 특히 공산권 국가를 방문할 때 파급효과가 컸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폴란드 방문은 동유럽 공산권 붕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9년 9일 동안 폴란드 주요 도시를 돌며 수백만명이 모인 미사를 이끈 요한 바오로 2세는 '신념을 잃지 말라, 패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자국 출신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폴란드에는 민족주의와 독립의식이 움텄다. 다음해 폴란드에는 동구권 최초로 독자적 노동조합 '자유노동조합'(Solidarity)이 설립됐다.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는 동구권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를 알린 신호탄으로 평가받는다.


1998년 쿠바 방문은 반세기 잠겨 있던 빗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쿠바는 세계를 향해, 세계는 쿠바를 향해 빗장을 풀기를 기원한다"고 역설했다.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쿠바에서는 가톨릭의 교세가 빠르게 성장했다. 2014년 두 번째로 이뤄진 교황 방문(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과 쿠바의 관계의 촉매제가 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한 1984년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식.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독재 국가에서도 교황 방문은 큰 영향을 끼쳤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했다. 쿠데타로 집권해 정통성이 취약했던 전두환 정권은 교황 방문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한국 땅을 밟은 교황은 첫 방문지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광주 금남로를 찾았다. 교황의 광주 미사는 전국민이 정권의 금기였던 '광주'를 떠올리는 계기가 됐다.

최근 바티칸과 중국 정부가 주교 임명 문제를 합의한 이후 교황의 방중 가능성도 거론된다. 만약 성사될 경우 세계 인구의 5분의1이 모여 있는 중국이 가톨릭에 문을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 내 가톨릭 신자는 약 1000만명으로 추정된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북 의사를 밝히면서 관련 절차도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북한의 공식 초청장 전달, 일정 조율 등이 뒤따른다. 정치권에서는 교황의 방북 시기로 내년 초를 점치고 있다. 지난 15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교황이 내년 봄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교 수립이 가시권에 들어온 중국을 방문하면서 함께 북한에도 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