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받아들인 사우디 해명 "카슈끄지 싸우다 사망"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미국 시민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의혹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시위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로 분장한 모습. /AFPBBNews=뉴스1

사우디 정부가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피살 사실을 3주 만에 인정한 가운데, 각국이 사우디에 추가 설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를 두둔하고 나섰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 정부의 발표에 대해 "위대한 첫 걸음"이라고 평가하며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 정부가 조사 결과에 따라 18명을 구금한 것을 칭찬하기도 했다.


앞서 사우디 검찰은 이날 카슈끄지의 사망과 관련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카슈끄지가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 내에서 용의자들과 우발적으로 몸싸움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구체적인 증거 및 정황을 언급하지 않은 채 이와 관련해 자국인 18명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블룸버그는 "카슈끄지의 사체가 어디 있는지, 왜 사우디 정부가 지난 3주 동안 카슈끄지가 살아서 영사관을 나갔다고 주장해왔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세계 각국은 사우디에 추가 설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사우디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밝혔고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무기 수출 보류 입장을 드러냈다.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도 "완전한 진실을 듣지 못했다"고 지적했으며 호주, 프랑스 등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이 사건을 별도로 조사 중인 터키 정부는 "절대로 이 흉측하고, 소름끼치며, 비인간적이고 불법적인 행위가 그냥 지나가도록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진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주먹 다툼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 기이하다"면서 "미국 정부의 사우디 조사는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국 상원은 최근 카슈끄지 사건 조사를 미 당국에 공식 요청했으며 결과에 따라 사우디 왕실은 미국 내 자산 동결 및 미국 입국 금지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사우디를 감싸는 이유로 양측 간 금전적인 관계가 지목된다. 사우디는 미국산 무기의 최대 수입국이다. 미국은 지난 5년 무기 수출량의 20%를 사우디에 의존해왔으며, 지난해에만 사우디의 대미 무기 수입액이 180억달러(20조원)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사우디에 제재를 가한다면 방위산업체가 피해를 본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냈고, 이날도 미국과 사우디 왕실과의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BS 등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 왕실 간의 개인적인 유착관계를 지목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01년부터 사우디 왕실과 친분을 맺어왔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왕실이 도와줬다는 내용이다.

유가 상승 우려도 사우디를 감싸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대이란 제재 여파로 최근 유가가 급등한 가운데, 최대 산유국 사우디마저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 유가가 폭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에 유가를 낮추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라고 촉구해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