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깨 쓰는 퇴직연금 "중도인출 문턱 높여야"

퇴직연금이 잦은 중도인출로 연금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고령화 시대 노후준비에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대책이 시급하다. 국민 대다수가 노후소득으로 굳게 믿고 있는 공적연금은 실제로 일상적인 노후 생활비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월소득 200만원을 기준으로 중간에 한 번도 미납하지 않고 40년을 꼬박 넣어야 간신히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액) 40%대를 달성할 수 있다. 월 2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소득대체율 42%를 달성해 월 84만원의 연금을 받으려면 20세에 국민연금에 가입해 59세까지 중단없이 보험료를 납입해야 한다. 소득대체율은 소득이 높을수록 낮아지기 때문에 월 200만원 이상 버는 사람은 40년간 꼬박 국민연금을 납입해도 연금이 소득의 40%도 안된다.



국민연금이 소득의 절반도 안되는데도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국민연금에 노후준비를 전적으로 의존한다. 2015년 보험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2040년에 65세 이상 고령자에 진입하는 현재 40~50대의 51~71%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이 생각하는 노후의 월 적정생활비는 부부 기준 271만원, 개인 기준 163만원인데 이는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에 달성하기 어려운 소득 수준이다.

결국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연금(공적연금)을 1층으로 하고 기업이 보장하는 퇴직연금(기업연금)을 2층, 개인이 직접 준비하는 개인연금을 3층으로 하는 ‘3층 노후대비책’이 공고히 마련돼야 수명연장에 따라 안정적인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 특히 퇴직연금은 지난해 7월부터 자영업자를 비롯해 공무원까지 소득이 있는 모든 경제활동자가 가입할 수 있어 직종에 관계없이 폭넓은 노후보장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도인출 기준을 해외처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외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중도인출이 금지되는 반면 국내는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사망, 영구장애, 55세 이후 퇴직 등으로 근로활동을 중단했거나 의료비나 주택구입 등 긴급자금 수요가 발생한 경우로 중도인출 사유를 명확히 제한한다. 또 인출사유별로 인출한도가 따로 정해져 있어 한도 내에서 부분인출만 가능하다. 의료비 지출은 연간소득의 7.5%까지, 최초 주택구입비와 재건축비용에 대해서는 1만달러(약 1130만원)까지만 중도인출이 가능한 식이다.

영국의 경우 건강상의 이유로 인한 퇴직, 기대여명이 1년 이하인 경우 외에 다른 사유로 중도인출하면 55%의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 일본도 중증장애와 사망의 경우에만 중도인출이 가능하고 다른 사유에 의한 중도인출은 아예 금지돼 있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근속연수가 짧고 이직이 잦아 퇴직급여의 적립금이 매우 적은 상황”이라며 “퇴직급여가 지속적으로 쌓여 충분한 연금자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중도인출 제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