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탓, 장애인 실업자로 전락" 성난 부모

장애인직업재활시설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소공원에서 열린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최저임금 국가책임' 요구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자폐성 장애를 겪고 있는 24살 아들을 둔 한모씨(60)는 최근 걱정이 많아졌다. 아들이 성인이 된 후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일 해왔지만 정부가 이들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도록 방침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그동안 한씨의 아들은 노트를 포장하는 등 단순 작업을 하면서 한 달에 약 20만원 정도를 받았다.

한씨는 "그동안 아들이 시설에서 여러 사람도 만나면서 일하는 자체를 즐거워했는데 앞으로 최저임금 적용이 의무화되면 그 일마저도 못하게 될 것 같다"며 "정부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들이 일을 그만두면 당장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을 돌봐야 하는데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느냐"고 말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근무하는 중증장애인의 처지를 정부가 제대로 모른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는 23일 오후 집회를 열고 "우리는 사업가가 아니라 사회복지사"라며 "직업재활시설 장애인의 최저임금을 국가가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협회가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개최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최저임금 국가책임 요구 집회'에는 중증장애인 부모와 관련 시설 종사자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최저임금 국가책임' '보충급여 즉각시행' 피켓을 들고 "장애인 최저임금을 직업재활시설의 책임으로 전가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일반 작업환경에서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특별히 준비된 작업 환경에서 직업 훈련을 받거나 직업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장애인들이 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하자는 취지다. 협회에 따르면 올 6월을 기준으로 전국에 있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639곳에서 장애인 1만8106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중 중증 장애인이 94.7%(1만7152명)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집회 참가자들은 정부가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 최저임금 적용 비율을 높이면서 장애인들을 실업자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김행란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중앙회장은 "그동안 어디에도 설 곳 없는 중증장애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힘 써왔지만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비난만 돌아왔다"며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일은 권리이자 의무이며 그 어떤 뛰어난 복지도 일 없이는 완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협회는 이날 성명서에서 "고용노동부가 우리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범법자로 몰고 있다"며 "직업재활시설 운영이 한계에 이르렀지만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에 대해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증장애인과 관련된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한나 한국장애인개발원 직업재활팀장은 "장애인직업재활 시설에서 배우는 장애인들이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더 지원을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최저임금 중 사업주가 지급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전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문제를 노동이 아니라 복지의 개념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강동욱 한국복지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직업재활시설에 있는 장애인 10명 중 6~7명은 일반적인 노동자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임금 보전이 아니라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국가가 보호해야 할 이들을 노동의 영역으로 가져와서 최저임금을 적용해달라는 주장은 모순"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