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절반 "전관예우, 실제로 존재…재판 결과 바꿀 수도"

↑판사, 검사, 변호사, 법원 직원, 검찰 직원, 변호사 사무원 등 법조직역종사자 총 1391명을 상대로 이뤄진 인식조사. 제공=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

판·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 분야 종사자들 가운데 약 절반이 '전관예우'가 실제로 존재하고, 형사재판에서 전관변호사들이 재판의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재판을 해본 사람 10명 가운데 3명은 담당 판·검사와 연고가 있는 변호사 또는 전관변호사의 선임을 제안받았고, 이들 가운데 40%는 실제로 그런 이들을 선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전관변호사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법조계 '전관 문화'의 실상이다.



◇재판 해본 사람 50% 이상 "전관 써서 좋은 결과 받았다"


24일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가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받은 '전관예우 실태조사 및 근절방안을 위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형사사건의 경우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거나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28.4%가 연고가 있는 변호사 또는 전관변호사의 선임을 제안받았고, 그 중 39.4%는 실제로 그들을 선임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관변호사를 제안받는 시점은 검찰 조사(45.5%) 또는 경찰 조사(42.4%) 등 수사 단계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구속 여부를 가리는 영장실질심사(구속전 피의자심문) 또는 구속적부심 단계라는 응답과 1심 재판이란 응답은 각각 24.2%였다.



선임 이유는 '연고관계나 전관변호사의 영향력을 이용해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라는 답변이 53.8%로 가장 많았다. '최소한 더 나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므로'란 답변이 38.5%로 뒤를 이었다.



이들은 '담당자와 친분이나 연고 관계가 있는 검사 출신의 변호사'를 가장 많이 선임했으며 통상적인 변호사의 보수와 비교할 때 평균 301만6667원을 더 지급했다고 답했다.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법원에서 민사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35.6%가 연고가 있는 변호사 또는 전관변호사 선임을 제안받았고, 다시 그 중 50%가 실제로 선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임 이유는 '최소한 더 나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므로'란 답변이 44.4%로 가장 많았고 '영향력을 이용해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란 답변은 38.9%에 그쳐 형사사건과 차이를 보였다.

이들은 '담당자와 친분이나 연고관계가 있는 판사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이 가장 높았는데, 통상적인 변호사의 보수와 비교해 평균 183만3333원을 더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형사사건과 민사사건 소송경험자 모두 전관변호사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답변이 각각 61.5%와 55.6%로 절반을 넘겼다.


◇법조계 종사자 55% "전관예우, 실제로 존재한다"


한편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직역 종사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이들은 전관예우와 연고주의로 인한 부당한 특혜가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검찰 수사 단계를 지목했다. 이어 영장실질심사 단계와 경찰 수사 단계, 형사재판 1·2심 등이 꼽혔다.

이들 가운데 형사재판에서 전관변호사들이 '재판의 결론을 바꿀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8.6%에 달했다. 전관변호사의 구체적인 혜택으론 '증거신청에 대한 채부, 공판기일 및 선고기일의 지정과 변경 등에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50.4%),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될 수 있다'(44.6%), '실형이 선고돼야 할 것을 집행유예로 바꿀 수 있다'(44.6%) 등이 꼽혔다. 다만 판사의 경우 '재판의 결론을 바꾸는 영향은 없다'(45.0%)는 의견이 높게 나와 다른 직역과 큰 인식 차를 보였다.


민사재판에서 전관변호사들의 영향력에 대해선 '증거신청, 기일지정 등 재판 절차상 편의를 받을 뿐 결론을 바꾸는 영향은 없다'는 응답이 47.4%로 '결론을 바꿀 수 있다'보다 많았다. 구체적인 혜택으로는 '증거신청에 대한 채부, 변론기일 및 선고기일의 지정과 변경 등에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48.4%), '사건이 불리하게
진행될 경우 조정절차에 회부해 강제조정을 하는 등의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40.6%), '증거 채부 및 평가에 따라 사실인정이 달라져서 승소패소 여부가 바꿀 수있다'(36.4%) 등의 응답이 나왔다.

'전관예우'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일반국민들 가운데 41.9%, 법조직역 종사자들 중 55.1%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답했다. 다만 법조직역 종사자들의 경우 응답자의 직업에 따른 편차가 컸는데, 특히 판사들의 경우 '전관예우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4.2%로 높았다.


연구팀은 "소송절차상 전관변호사나 연고관계 있는 변호사의 부당한 변론활동을 억제할 필요가 있는데, 현행 제도만으로는 미약하다"며 "직급, 근속기간 등에 따른 법조계 내 연고관계의 가능성 정도를 고려해 차별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하고, 특히 최고위직 법조인의 개업 및 사건 수임에 대해 근본적인 제도 또는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한 최우선 개혁과제로 '전관예우 근절방안'을 마련하기로 사법발전위원회에서 결정한 뒤 이를 위한 실태조사 차원에서 이뤄졌다. 사법발전위는 최근 이 같은 연구결과를 보고 받고, 이를 토대로 실효성 있는 전관예우 근절방안을 연구해 다음 위원회 회의에서 보고할 것을 주문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전관예우 근절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