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포 떼고, '혁신 없는' 일자리 종합대책…정책능력 한계 드러내

현대차그룹이 서울 삼성동 옛 한국전력 사옥에 건립하려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조감도. 당초 지난해 1월 착공할 계획이었지만 인허가 문제로 무기한 연기됐다.

정부가 24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확정한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방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마련됐다. 지난 7월 취업자 수가 지난해 같은달보다 5000명 증가하는 데 그치자 문 대통령은 8월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고 특히 고용상황이 어려운 분야와 연령대에 대해 더욱 다양하고 강력한 대책들을 마련하라"고 말했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주도로 기재부를 비롯한 각 부처 브레인들이 2달 동안 매달렸다. 5차례 당·청 협의, 4차례 관계장관 회의·간담회를 진행했다. 김 부총리는 지난 9일 "단기적으로 맞춤형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 경기를 더욱 활성화는 방안, 궁극적으로 규제 문제라든지 민간투자를 활성화시켜 시장과 기업의 기를 살려 일자리 나오게 하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있다"며 기대를 끌어올렸다.


특히 기존 업계의 반발이 극심한 카풀 서비스, 공유숙박 등 공유경제 확대와, 착공 계획 시점을 2년 가까이 넘겼지만 인허가 문제로 사업이 무기한 연기된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건립 사업 지원 등이 들어갈지 주목됐다.

하지만 A4 용지 18쪽짜리 대책에는 공유경제에 대해 상생방안 마련, 허용범위 확대, 제도정비 병행 등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다. 현대차 GBC와 관련한 언급은 한 줄도 없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8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다른 대책들은 대부분 어디선가 한번 이상 봤던 '재탕·삼탕'이다. 대책의 제목은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혁신적인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제조업 스마트화, 생활SOC 확대, 공공기관 투자 확대, 산업구조 고도화 등은 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방향, 내년도 예산안, 혁신성장 선도사업 대책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효용성 낮은 접경지역 내 군사보호시설구역을 연내 해제한다는 내용도 들어갔지만 국방부는 그동안 매년 군사보호시설구역을 해제하고 있어 새로운 건 아니다. 근로 시간 단축 연착륙 방안도 "연내 구체화하겠다"며 두루뭉술 넘겼다.


자동차부품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며 정부에 3조원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번 대책에는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보증 비율을 5%포인트 높이고 보증료율을 0.3%포인트 인하하는 방식으로 1조원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에 그쳤다.

그나마 유류세를 15% 인하한다는 내용이 구체적이지만, 이미 2008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시행한 정책의 재탕이다.

그런데도 김 부총리는 이번 대책에 대해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해서 투자활성화화 규제혁신 등 현단계에서 할 수 있는 대책을 최대한 담았다"고 높이 평가했다.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는 전국 택시 산업 종사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택시업계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번 대책은 정부의 갈등 조절, 이견 조정 기능이 사실상 마비 상태라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당초 현대차그룹 GBC 건립은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한 투자애로 해소 프로젝트 1순위로 논의됐다. 이 프로젝트는 건설 및 인허가 기간에 7만9000여 명, 준공 후 20년간 113만7000여 명 등의 고용창출 효과가 기대되는 사업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등의 반대 의견을 꺾지 못해 결국 대책 최종본에서 제외됐다. 대기업 투자에 대한 낙수효과를 부정하는 입장에서 특정 대기업 지원 발표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김동연 부총리는 이와 관련, 경제장관회의를 마치고 "특정업체를 지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민간 투자 애로 해소를) 금년 12월 안에 2단계로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유경제 확대 역시 택시업계와 숙박업계 등의 반발을 우려한 여당의 입김 때문에 기존 정부 입장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정부의 현실 인식 자체도 문제가 있다. 문제인 대통령은 '(고용상황 결과에)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해달라"고 주문했다. 기업 투자는 6개월 연속 감소했고, 고용률은 전년 동월대비 8개월 연속 하락세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대책이 악화된 경제·고용 상황을 타개하는 목적이 아닌 추가 악화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 대응'임을 강조했다. 절박성이 그만큼 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