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살린' 사우디, 자국 행사 참가한 파키스탄에 60억$ 지원

23일(현지시간)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왼쪽)이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왕을 만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재정 악화로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요청한 파키스탄이 카슈끄지 사태로 코너에 몰린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60억달러를 지원받는다. 위기에 빠진 양국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은 결과다.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아사드 우마르 파키스탄 재무장관은 이날 "사우디가 파키스탄의 부채 정리를 돕기 위해 3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추가적으로 원유 수입 대금을 유예하는 방법으로 30억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연간 재정적자가 180억달러에 달하며, 내년 6월까지 갚을 부채는 90억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이 80억달러에 불과해 7~8주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은 다음달 7일부터 IMF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전문가들도 파키스탄이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데 12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가 절반에 해당하는 6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한시름 놓게 됐다.

사우디 측도 파키스탄을 통해 체면을 살릴 수 있게 됐다. 이날 앞서 사우디 왕실 주최로 개막한(23~25일)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행사는 카슈끄지 사태 여파로 주요 인사와 언론사가 불참을 선언하면서 반쪽짜리가 될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당초 FII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제레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등 재계 거물 참석으로 '사막의 다보스'의 위상을 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코너에 몰린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지난주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에게 행사 참석을 부탁했다. 칸 총리는 이를 받아들이며 FII로 떠나기 전날인 지난 22일 "동맹국이나 IMF의 원조 없이는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사우디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밝힌 바 있다.

파키스탄은 지난 9월에도 사우디에게 지원 요청을 했지만 당시엔 사우디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에 빠진 사우디 측이 먼저 FII 초청의사를 밝히며 파키스탄이 협상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이외에도 파키스탄의 과다르항구 및 여러 광산사업에 사우디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안을 논의 중이다.


이로서 파키스탄은 오는 11월 IMF와의 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IMF는 구제금융 지원 국가에 강력한 재정개혁을 요구하는데, 사우디로부터 자금을 확보하면서 IMF의 압박이 줄게 된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FT에 "사우디의 대출로 파키스탄이 경제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며 "중국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결국 우리는 IMF로 가야한다"며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같은 은행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