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의 위력…중국기업마저 '脫중국' 대열에

지난 18일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 위치한 한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에서 노동자가 작업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중국을 떠나 동남아시아 등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기업이 늘었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미국이 높은 관세까지 부과하자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 기업까지 탈출 행렬에 동참하고 있어 당분간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정밀모터 기업 일본전산은 중국 내 생산시설 일부를 멕시코로 이전하기로 했다. 자동차나 가전에 사용되는 모터 제품이 미국의 25%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되면서 채산성을 맞추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회장은 23일 결산 기자회견에서 "무역전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며 "이에 따른 비용 증가를 피하고자 생산지역을 이전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자동차용 오디오 시스템을 생산하는 파나소닉은 미국 수출 물량을 태국과 멕시코로 돌렸다. 관세 부과를 피하기 위함이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 배터리를 수출하는 파나소닉은 이미 큰 손해를 입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원료인 리튬과 코발트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파나소닉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부과로 많게는 100억엔(1003억원) 정도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도 진지하게 설비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 난방 및 냉방시스템 업체인 레녹스 인터내셔널의 토드 블러든 최고경영자는 22일 실적 설명회에서 "대중 관세가 단기에 끝날 것이란 확신이 없다"면서 "동남아시아 등 조건을 만족하는 저비용 국가로 옮겨 관세를 피할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전력 모듈 생산업체 바이코의 최고재무관리자도 "중국 외 다른 공급 업체를 찾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에 대안이 없는 부품은 관세 적용 대상에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중국 기업도 생산시설을 국외로 옮기기 시작했다. 유명 가전업체 TCL은 멕시코 공장의 LCD TV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올해 생산량은 300만~400만대로 작년의 200만대보다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LCD TV는 아직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부과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로 풀이된다.


중국의 폴리에스테르 대기업 저장하이리더신재료(浙江海利得新材料)는 베트남에 첫 국외 생산거점을 마련하고 2020년 중반부터 제품을 생산하기로 했다. 이 회사 매출의 20%가 미국 수출이다. 중국의 자전거 부품 생산업체인 신룽처랴오(信隆車料)도 베트남으로 생산공장을 이전하며, 산둥링롱타이어는 세르비아로 공장을 옮긴다. 애플의 무선이어폰 아이팟을 생산하는 중국의 거얼성쉐(고어텍)도 생산 물량 일부를 베트남으로 돌릴 계획이며, 대만 페가트론은 중국에서 생산하던 통신장비 생산시설을 대만으로 다시 옮길 예정이다.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 데 지난 9월 2000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는 관세율이 10%에서 25%로 올라간다. 블룸버그통신은 "무역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기업들이 중국에서 발을 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중 무역 관세 부과를 완화할 계획이 없으며, 중국이 더 큰 고통을 느끼기를 바란다"며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큰 내수 시장을 가진 중국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굳건하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 자료에 따르면 올해 1~6월 중국에 대한 FDI 규모는 702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늘어 세계 최대를 기록했다. 다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인건비 상승과 무역전쟁을 계기로 중국 진출 기업의 동남아 이전이 가속할 것"이라며 "이미 태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에는 순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