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반도체굴기’ 타격에…中 “첨단산업 무력화 의도” 발끈

푸젠진화 메모리 반도체/사진=바이두 캡처.

미국이 중국 '반도체 굴기'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푸젠진화반도체에 대해 제재에 들어가면서 중국의 첨단기술 육성 전략에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반도체뿐 아니라 비슷한 방식으로 중국의 첨단 기술 육성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어서 미국의 중국 기업 제재가 관세에 이은 강력한 대중국 공격 수단으로 부상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굴기' 주역, 푸젠진화 제재에 발끈한 中= 중국 상무부는 30일 밤 미국의 푸젠진화에 대한 제재와 관련해 홈페이지에 게재한 성명에서 "미국이 국가안전 개념을 확대 해석해 수출 통제 조치를 남용하고 일방적으로 제재를 가해 기업의 정상적인 국제 무역과 협력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잘못된 조치를 즉각 중단하고 양국 기업간 정상적인 무역과 협력을 촉진하고, 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중미 상호 신뢰 증진과 협력에 유리한 일을 많이 해야지 반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29일(현지시간) 중국 국유기업인 푸젠진화가 내년에 양산할 메모리 칩이 미국의 군사시스템용 칩 공급업체의 생존에 '심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이 회사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푸젠진화에 반도체 장비 등을 공급하려는 미국 기업은 당국의 특별 승인을 받아야 한다.

◇中, 메모리 반도체 육성 전략 타격 불가피 = 중국 정부가 즉각적으로 성명으로 내고 미국의 결정을 비판한 것은 이번 조치가 미칠 파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첨단 분야 육성책인 '제조 2025'의 중심에 반도체가 있고, 반도체 굴기의 핵심 기업 중 하나가 푸젠진화다. 푸젠진화는 푸젠성 산하 국유기업으로 2016년 2월 설립됐다. 창장메모리(YMTC), 허페이창신 등과 함께 내년 본격 양산에 들어가 중국 메모리 반도체 생산의 원년을 만들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거래 금지 조치로 내년 양산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당장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등 핵심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대부분 미국 기업이다. 2015년 기준 15%에 그친 반도체 자급률을 오는 2025년까지 70%로 높인다는 중국 정부의 야심찬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반도체가 흔들리면 다른 첨단 산업도 영향을 받게 된다. 제조 2025에 포함된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 등 전략 산업들이 대부분 방대한 데이터 처리를 기반으로 해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지 않으면 기술 자립 등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리서치의 마크 뉴먼은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중국 반도체 야심에 중대한 조치"라고 말했다.


◇수출관리규정 통한 제재…관세 이은 美의 새 무기= 이번 제재는 지난 4월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한 제재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미국의 대중국 전략 측면에서는 훨씬 의미심장하다. ZTE가 미국이 금지한 이란, 북한과의 거래가 적발돼 제재를 받은 반면 푸젠진화에 대한 제재는 미 상무부의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른 '기업 목록'에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EAR은 미국 국가안보나 대외정책에 해로운 외국기업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아주 시급한 경우에 적용돼왔다. 통상법 전문가인 더글러스 제이컵스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 목록'을 꺼내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적용범위가 극적으로 확장됐다"고 지적했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중국 핵심 기업들도 제재 대상에 추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중국 전문 이코노미스트인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는 "미국이 중국이 가져선 안 된다고 보는 첨단기술이라면 어떤 쪽으로든 이번과 같은 조치를 확대할 수 있다"면서 "이번 제재는 ZTE와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이번 제재에서 보듯 미국 정부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시급한 안보 위협으로 보고 있다. 불공정하거나 불법적인 방식으로 첨단 기술을 흡수해 미국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판단이다. 미국이 시작한 이번 무역전쟁의 핵심적인 목표가 '제조 2025'로 대표되는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을 무력화시키는데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푸젠진화에 대한 제재와 후속 조치들이 미중 무역전쟁을 한층 더 격렬한 양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