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큰별 지다②]"동시대 남성의 자화상"…영화보다 영화 같았던 신성일의 삶

영화 '별들의 고향'(왼쪽), '야관문: 욕망의 꽃' 스틸컷.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배우 고(故) 신성일. 그는 영화계 데뷔한 20대부터 81세로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성을 대변하는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고인의 데뷔작은 1960년 고 신상옥 감독, 고 김승호 주연의 영화 '로맨스빠빠'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아닌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로맨틱한 아버지를 그린 작품으로, 한국 가족 휴먼드라마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성일은 이 영화에서 김승호의 고교생 둘째 아들 ‘바른’ 역으로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당시 그의 나이 23세였다.

첫 등장 이후 당시 배우들과 다른 이국적이고 세련된 외모, 대중을 사로잡는 감정 표현으로 단번에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했다. 이후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년) 등에 출연하며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

출연 작품만 500편이 훌쩍 넘는 그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단연 '맨발의 청춘'이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다. 극 중에서 길거리 삶을 사는 폭력배 서두수 역을 맡아 반항적이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으로 영화의 흥행을 견인했다. 부유한 외교관의 딸 요안나 역으로 출연한 당대 최고 여배우 엄앵란과 이 작품을 계기로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청춘 멜로 영화 '초우'(1966년)를 비롯해 '만추'(1966년), '안개'(1967년) '장군의 수염'(1968년), '휴일'(1968년) 등 1960년대 청춘 영화 대부분에 신성일이 출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20대 배우 신성일은 당대의 '청춘 그 자체'였다.

영화 '맨발의 청춘' 스틸컷.

1960년대에는 20대 청춘스타로 빛났던 시기였다면, 30대로 접어든 1970년대는 화려함보다 원숙함이 무르익던 시기였다. 쓸쓸한 화가 문호 역으로 출연한 '별들의 고향'(1974년)이 대표적이다. 극 중 문호는 알코올 중독, 자학 증세를 보이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남자로, 이 영화를 통해 신성일은 '꽃미남', '반항아' 이미지의 20대 때와 달리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신성일이 배우로 전성기를 달리던 1960, 70년대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의 경제 발전이 시작되던 격변기였다. 신성일은 단순히 '남성미'만을 강조하던 다른 배우와 달리 격변기에 소외된 20대 청춘,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30~40대 남성의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여성들에게는 잘생긴 외모에도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남성으로 사랑받았다.

백발 노장이 되어서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배우로서의 멋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대 남성의 대변자를 자청했다. 그의 마지막 주연작이 된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2013년)에서 부인과 아들을 잃은 후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종섭 역을 맡아 젊은 간병인에게 생의 마지막 욕망과 꿈 같은 사랑을 느끼는 연기를 펼쳤다.

지난해 10월15일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 기자간담회에서 신성일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신성일은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 제작자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71년 영화 '연애교실'이 그의 감독 데뷔작이며 이후 '어느 사랑의 이야기'(1971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1971년), '그건 너'(1974년) 등 4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1989년에는 성일시네마트를 설립해 제작자로 활동했다.

지난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회고전 주인공으로 나섰던 신성일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난 '딴따라'가 아닌 영화인으로 살아온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요즘 영화는 잔인하게 복수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이는 본질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며 "'행복'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 중이다.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는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김홍신 작가의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영화화할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매듭짓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아 안타까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