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큰별 지다③] "애비 없다는 소리 듣지 말고 얼굴값 하라"

영화배우 신성일(강신성일)이 4일 새벽 폐암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배우 신성일이 지난달 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는 모습./사진=뉴스1

고(故) 신성일(본명 강신영)은 대한민국 영화사의 산증인이다. 1960년 배우로 데뷔한 이래 한국 영화의 부흥기와 함께 성장했고, 오직 영화와 예술을 사랑했던 종합 문화예술인으로 눈을 감았다.


1937년 대구 인교동 한옥마을에서 태어난 신성일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소년이었다. 엄격했던 어머니로부터 "애비 없다는 소리 듣지 말고 얼굴값을 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그 덕에 대구의 명문 경북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꿰맨 양말을 신느니 한겨울에 맨발을 택한' 학창 시절 일화에서 어릴 때부터 자존심이 강했던 그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의 인터뷰를 담은 책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에서 신성일은 "양말에 구멍이 나도 어머니는 직장 생활이 바빠 주로 외할머니가 챙겨주셨는데 양말에 구멍이 나면 전구를 집어넣어서 바늘로 꿰매주셨다"며 "할머니 앞에서는 양말을 신고 밖으로 나가 벗고 맨발로 학교에 갔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마 당시 내 식의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며 "그런 자존심을 살리는 오기가 있었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 혼자 서울로 올라와 한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돈을 벌며 공부하려 했던 신성일은 우연히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등록하면서 배우의 길로 접어드는 계기를 맞는다. 이후 1957년 고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신필림에 신인 배우로 '입사', 1960년에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다. 당시 신상옥 감독이 '뉴 스타 넘버원'이라는 의미를 담은 '신성일'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국적인 외모와 연기력을 갖춘 그는 단숨에 1960년대 청춘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 유현목 감독에게 발탁돼 '아낌없이 주련다'(1962년)에서 첫 주연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맨발의 청춘'(1964년), '초우'(1966년)를 비롯해 '만추'(1966년), '안개'(1967년) '장군의 수염'(1968년), '휴일'(1968년), '별들의 고향'(1974년), '태양 닮은 소녀'(1975년), '지금 이대로가 좋아'(1984년), '아빠는 보디가드'(1995년), '창'(1997년), '야관문: 욕망의 꽃'(2013년) 등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출연한 작품만 500편이 넘는다.

1970년대에는 영화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1971년 영화 '연애교실'이 그의 감독 데뷔작이며 이후 '어느 사랑의 이야기'(1971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1971년), '그건 너'(1974년) 등 4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1989년에는 성일시네마트를 설립해 영화 제작 및 기획도 했다.

영화배우 신성일(강신성일)이 4일 새벽 폐암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배우 신성일이 지난 2015년 10월1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1FF)' 개막식에서 팬들의 환호에 인사하는 모습./사진=뉴스1

고인은 영화뿐만 아니라 뮤지컬에도 관심을 쏟는 등 종합문화예술인의 행보를 걸었다. 특히 지난 2008∼2013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사장을 맡아 뮤지컬 홍보대사 역할도 톡톡히 했다. 2003년에는 미국에서 뮤지컬을 공부하는 젊은 학생을 한국에 연결해주는 '뉴욕 액팅 아카데미'를 운영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비록 대학교 공연이었지만 대경대 뮤지컬과 학생들이 신성일 일대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 '신성일, 맨발의 청춘'을 선보이기도 했다.

신성일은 정계에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지난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이때 이름을 강신성일로 바꿨다.

그는 죽을 때까지 영화배우가 아닌 '영화인'으로 살길 바랐다. 지난해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 주인공으로 나섰던 신성일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난 '딴따라'가 아닌 영화인으로 살아온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집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에서도 그는 "은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영화인"이라며 "올바른 한국 영화 정신을 지닌 영화인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