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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99세 투자자 김규한 사장, 44년만의 투자서명

1974년 강기동 박사 설립 한국반도체에 100만달러 투자, '역사적 기록 차원…사업계획서 사본에 서명'

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입력 : 2018.11.0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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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인터콘티넨탈 서울코엑스에서 열린 '강기동과 한국반도체'(아모르문디 펴냄)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김규한 켐코 사장이 1974년 당시 사업계획서 사본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강기동 박사./사진=오동희 기자
지난 3일 오후 인터콘티넨탈 서울코엑스에서 열린 '강기동과 한국반도체'(아모르문디 펴냄)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김규한 켐코 사장이 1974년 당시 사업계획서 사본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강기동 박사./사진=오동희 기자
99세의 경영인과 85세의 엔지니어가 44년 전에 하지 못했던 투자계약서에 3일 서명했다.

지난 3일 오후 인터콘티넨탈 서울코엑스에서 열린 '강기동과 한국반도체'(아모르문디 펴냄)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의 일이다.

1974년 1월 설립된 한국 최초의 전공정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는 당시 미국 모토롤라 생산부장 출신인 41세인 젊은 엔지니어(강기동)와 콜린스(Collins) 무전기 한국대리점으로 돈을 번 55세의 사업가(김규한 KEMCO 사장)의 합작품이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KARL) 설립이 계기였다. 1955년 설립된 KARL에서 서울대 전기공학과 학생 강기동이 당시 KBS 기술부에 있던 이덕빈(KARL 이사)씨의 소개로 김규환씨를 만난다. 그로부터 8년후인 1973년 미국의 한 모텔방에서 한국반도체의 밑그림 그려졌다.

원래 한국반도체는 이보다 3년전인 1971년에 쌍용그룹에서 1000만달러로 투자 받아 시작할 예정이었다.

강 박사의 경기고 49회 동기인 고 조해형 나라홀딩스 회장(공화당 재정경제위원장 김성곤 쌍용양회 창업주의 사위)과 함께 뜻을 모아 그해 말 한국에 들어가 사업을 시작하기로 모든 계획을 짜놓은 상태에서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지난 3일 오후 인터콘티넨탈 서울코엑스에서 열린 '강기동과 한국반도체'(아모르문디 펴냄)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강기동 박사가 1974년 당시 사업계획서 사본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중앙은 한국반도체 투자자인 김규한 켐코 당시 사장./사진=오동희 기자
지난 3일 오후 인터콘티넨탈 서울코엑스에서 열린 '강기동과 한국반도체'(아모르문디 펴냄)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강기동 박사가 1974년 당시 사업계획서 사본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중앙은 한국반도체 투자자인 김규한 켐코 당시 사장./사진=오동희 기자

모든 사업계획을 마무리짓고, 김성곤 회장에게까지 승인을 받은 상황에서 1971년 10월2일 예기치 못한 공화당 내 '10.2 항명 파동'이 터진다.

당시 공화당 4인방의 핵심이었던 김성곤 의원 등이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건을 통과시키자, 대로한 박정희 대통령이 항명한 4인방을 포함해 23명의 공화당 의원을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고 가 치도곤을 낸 것이다.

이로 인해 김성곤 의원은 정계를 은퇴하게 되고, 그 여파로 한국반도체는 투자자를 잃고, 2년여간 표류하다가 김규환 사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스토리는 대략 알려진 내용이다. 1974년 1월 한국반도체 법인을 설립하고, 10월에 부천공장에 라인을 깔고 가동에 들어갔으나, 12월에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금난에 봉착해 삼성에 팔리게 된 것이다.

강 박사는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이미 사라진 한국반도체 투자 서명식을 가진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김규한 선생과 만났을 당시에는 스케치북에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사업계획을 써서 보여주고, 처음에는 회사 이름도 없어서 켐코의 이름으로 장비 발주하고, 자금을 김규한 선생이 마련했지만, 이에 대한 서류나 계약서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남그룹의 김향수 회장이 1968년 설립한 아남반도체는 반도체 조립공정으로는 처음이었으나, 실제 반도체 웨이퍼 가공을 한 사실상 반도체 제조는 한국반도체가 효시임에도 그 시작점에서의 '역사적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강 박사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한국반도체에서 시작해, 2년 만에 제품이 나오고, 그후에 후배들의 노력으로 이제 세계 1위의 반도체 강국이 됐다"면서 그래도 저는 어찌 서바이벌해 '강기동'이라는 그 이름 석자라도 남아 있는데, 여기 김규한 선생은 이름이 꺼져버리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내가 죽기 전에 한국 반도체 역사에 그의 이름이 남도록 하겠다는 게 소망이었다"며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나도 살아있고, 김규한 선생님도 아직 99세로 정정하셔서 이런 행사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3일 오후 인터콘티넨탈 서울코엑스에서 열린 '강기동과 한국반도체'(아모르문디 펴냄)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강기동 박사가 1974년 당시 사업계획서 사본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왼쪽은 김규한 당시 켐코 사장./사진=오동희 기자
지난 3일 오후 인터콘티넨탈 서울코엑스에서 열린 '강기동과 한국반도체'(아모르문디 펴냄)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강기동 박사가 1974년 당시 사업계획서 사본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왼쪽은 김규한 당시 켐코 사장./사진=오동희 기자

강 박사는 "이것이 나의 의무다(This is my duty!)"며 "저도 85세로 어린 나이는 아니고, 한국반도체의 존재도 없어졌고, 저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없어질텐데 그 전에 역사적 기록에 서명을 해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비록 제록스 카피본 사업계획서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사인해 오리지널처럼 역사에 남기고 싶다"고 덧붙였다.

44년 전에 쓰지 못했던 이 계약서는 이후 한국이 누적 수출 1조달러(약 1100조원)를 올린 반도체 산업의 씨앗이 됐다.

역사는 승리의 기록만이 아니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록함으로써 미래의 열쇠를 찾는 과정이다. 44년만의 이번 서명은 이런 점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쓰는 시발점을 찾았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
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
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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