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고 술판까지…염치없는 어른들, 놀 곳 없는 아이들

#.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 한 어린이공원. 5살 손녀와 함께 시소를 타러 놀이터에 나온 한 할머니가 얼굴을 찌푸렸다. 시소 옆에 설치된 의자에서 40대 남성 2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이를 보고도 태연히 담배꽁초를 모래사장으로 내던졌다.


#.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한 놀이터 어린이 공원 입구. 오후 1시 대낮 임에도 남성 3명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어린이 공원은 모텔과 술집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나온 한 엄마는 "이름만 어린이 공원이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고 말했다.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어린이공원과 놀이터가 어른들에게 점령하고 있다. 어른들은 놀이터와 공원 한복판에서 술판을 벌이고 버젓이 담배를 피우면서 아이들의 놀이 공간을 위협하고 있다.

12일 서울시가 경찰청과 합동 발표한 ‘서울시 공원 안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서울시 어린이공원 1111개 가운데 보통(B), 낮음(C) 등급을 받은 어린이 공원은 246개로 조사됐다. 2013년 총 1091개 어린이 공원 가운데 B, C 등급이 523개인 것과 비교하면 개선된 수치지만 여전히 5개 어린이공원 가운데 1곳은 안전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등급 판정에는 범죄 발생 빈도, 112 신고 건수 등 경찰 지표와 주민여론, 조사자 의견 등이 반영된다. 가장 안전등급이 낮은 C등급은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행, 마약, 방화 등 7대 범죄 6건 이상 △112 신고 70건 이상 △조사자 평가와 주민 여론 조사에서 최하점을 받아야 나온다.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에서 7살 아이를 키우는 김모씨(여·38)는 “엄마들끼리는 가는 놀이터가 정해져 있다”며 “모텔촌에 둘러 쌓여 있거나 어른들이 많이 몰리는 놀이터는 웬만하면 가지 않고 거리가 있더라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간다”고 말했다.

C등급을 받지 않더라도 술집이나 모텔 등 유흥가가 몰려있는 놀이터와 어린이 공원에서 어른들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실제 이달 1~3일 강서구와 영등포구, 구로구에 있는 놀이터 10곳을 방문해본 결과 7곳에서 담배꽁초와 빈 술병이 발견됐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모씨(42)는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지만 흡연하는 사람들이 많아 담배 연기가 많이 난다”며 “어떨 때는 노인들이 놀이터 한쪽에서 막걸리 판을 벌이고 있어 나갈 때마다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 공원과 놀이터 흡연·음주를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놀이터와 어린이공원은 금연구역이다. 흡연시 과태료 10만원을 부과 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흡연자를 일일이 단속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음주는 아예 단속 기준도 없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에는 공원 내 음주를 금지하는 내용이 없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부터 시내 도시공원을 중심으로 ‘음주청정구역’을 지정해 음주 행위 등을 단속하고 있지만 어린이공원은 음주청정 구역에서 빠져있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립공원은 일반공원과 별도의 규정을 두는 것처럼 어린이공원은 ‘어린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다른 공원과 별도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건강증진법을 개정해 어린이공원을 금주공원으로 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학교 보육학과 교수도 “놀이공원이나 놀이터의 설치 주체가 구청, 아파트, 학교 등 나뉘어져 있어서 통합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놀이터나 어린이 공원에 대한 안전 점검, 위생 점검, 위험 요소를 통합해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