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떠난 탄력근로제 논의...고심에 찬 고용노동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 빌딩에서 열린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 기업 노·사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두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논의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움직임은 뜸하다. 근로기준법에 명시한 제도개선안 마련 책임을 놔버린 모양새다. 논의를 주도해 노동계의 심기를 건드리기보다, 국회와 청와대가 총대를 메는 사이 한발 물러서 몸을 사리는 행보로 풀이된다.

15일 고용부 등에 따르면 고용부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한 독자적인 정부 방안을 국회 또는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선제적으로 제출하지 않을 방침이다.


탄력근로제는 주 52시간 근로 원칙을 ‘한 주(週)’ 기준이 아닌 분기, 반기 혹은 1년 단위로 하는 것을 말한다. 탄력근로제는 올해 7월1일부터 시행된 주 52시간제 근로시간제에 대한 보완책이다. 현행 3개월이 너무 짧아 계절산업의 성수기, 제조업의 R&D(연구개발)시기 집중근로 등에 적용하기 어려워 독일, 일본 등처럼 6개월~1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했다.

현재 청와대와 국회 등에서는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첫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방안에 합의한 데 이어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7일 "현행 최장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원래 탄력근로제 개선방안을 마련할 책임은 고용부에 있다. 지난 3월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당시 부칙 제3조(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을 위한 준비행위)에 "고용노동부장관은 2022년 12월 31일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양대노총 등 노동계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자체를 반대하면서 논의는 국회와 경사노위로 넘어갔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인사들은 연일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노동계의 주장과 선을 긋고 있다.

탄력근로제 개선방안 논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주 52시간제 때문이다. 주 52시간제 는 당초 올해 7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산업현장에서 준비가 부족하다고 호소하자 6개월간 계도에 중점을 두며 사실상 단속 유예기간이 이어지고 있다.

탄력근로제 개편이 시급한 상황에서 고용부는 단위기간 확대를 위한 실태조사만 붙잡고 있다. 매달 진행하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탄력근로제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문항을 추가하고, 노동연구원에 탄력근로제 사용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노동연구원의 연구 결과는 이달 말 나온다.

지난 14일 열린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 기업 노‧사 간담회'에서도 참석한 제조업체 근로자들은 이재갑 고용부 장관에게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시,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집중근로가 연속되는 경우 근로시간 제한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며 "근로시간 규정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장관은 이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았다.

고용부는 사회적대화에 논의를 맡기는 대신 실태조사 결과 등을 충분히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업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산업부나 중기부와 달리, 고용부는 노사 양측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고용부가 주도적으로 단위기간 확대방안을 내놓을 경우 향후 ILO핵심협약 국내 비준 등의 현안을 다룰 때 노동계의 협조를 구하는 게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