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8년 전 뒷돈 영업한 제약사에 약가규제, 적법"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정부가 8년 전 약사 등에게 리베이트(뒷돈)를 준 제약사가 만든 문제 약품의 약값을 인하하는 처분을 올해 초 내렸다. 제약사는 이같은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5부(부장판사 박양준)는 지난 8일 한미약품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약제 급여 상한금액 인하처분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한미약품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15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한미약품 소속으로 모 지역 영업팀장이던 A씨는 '리베이트-약가인하 연동제도'(이하 연동제)가 시행된 이후인 2009년 8월부터 2012년 5월까지 관할 구역 내 780여 의료기관 중 21곳에 2260만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등 약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동제란 제약사가 의료기관에 제공한 약값 총액에서 리베이트가 차지하는 비율만큼 건강보험 요양급여에서 삭감하는 제도다. A씨와 한미약품은 이를 이유로 2013년 8월 각각 벌금 700만원형을 선고받아 확정됐다.

복지부는 A씨의 위법 행위가 개시된 지 약 9년, 벌금형이 확정된지 약 5년이 흐른 시점인 올 3월이 돼서야 한미약품이 제조·공급하는 9개 의약품의 약제 급여 상한금액을 평균 17% 인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처분은 한미약품의 9개 약품 뿐 아니라 11개 제약사의 340개 약품에 대해 일괄적으로 내려졌다. 한미약품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한미약품은 △위반행위 시점으로부터 5년~8년이 지나 이뤄졌다는 점 △형 확정 후 약제 급여 인하처분이 나오기 전인 2014년에는 연동제가 폐지됐다는 점을 들어 "더 이상 약제 급여 인하처분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며 "이번 처분은 처분사유가 이미 실효돼 처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위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복지부는 2013년 형사사건 확정 이후 리베이트 제공기관과 조사대상 요양기관, 금액 등 구체적이고 객관적 증거자료가 확보되자 2014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제 상한금액 조정평가를 요청했다. 이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 후 인하금액을 결정해 이번 처분을 내린 것"이라며 "위법행위 이후 이번 처분에 이르기까지 복지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탓할 수 없다"고 했다.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그 상대방인 의무자가 '권리가 행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인정되는 '실권·실효의 법리'가 이번 사건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2014년 연동제 폐지는 리베이트 발생시 '상한금액 인하'가 아니라 아예 요양급여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한 제재수단을 강화하기 위한 법 개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그 이전의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상한금액 인하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연동제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는 신뢰를 한미약품에 부여하거나 상한금액 인하처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유발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미약품은 '약값 총액 대비 리베이트 금액의 비율'을 산정할 때,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기관만 표본에 넣고 리베이트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의료기관은 빼는 인하율 산정방식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산정기준으로 인해 인하율이 과도하게 높게 설정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연동제의 일차적 목적은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한 '제재'에 있고 이를 통해 리베이트로 형성된 약값의 거품을 일부 제거하는 결과를 거두는 것"이라며 "조사대상으로 삼은 기관 중 일부를 포함하지 않은 채 상한금액 인하율을 결정했다고 해서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