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사이 선택의 순간 올 것" 아시아 국가들의 걱정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가 15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폐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AFP

아시아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고민도 함께 커지고 있다. 그동안 양측과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언젠가 두 국가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 편을 드는 순간 다른 쪽을 적으로 두게 되지만 양국이 정면대결을 불사하며 편가르기를 종용할 경우에는 위험을 감수하고 특정 진영에 가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다.

1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는 전날 연례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 미국의 경쟁적인 비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의장을 맡은 리 총리는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이 서로 다른 쪽에 있는 두 나라의 친구라면, 가끔 두 나라 모두와 잘 지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두 나라 모두와 잘 지내려고 할 때 어색한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우리가 어느 쪽도 편을 들지 않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세안이 한쪽을 선택하거나 다른 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빨리 오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의 발언은 미중 충돌과 관련해 아시아 국가들이 갖는 부담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상대의 세력 확장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국가 차원의 외교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비판하면서 자국의 해외 투자 인프라를 강화하는 것으로 맞서고 있다. 주변국간의 영토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에서도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중국에 미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을 계속하며 견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군사 활동을 지역 안정에 대한 위협이라고 간주하고 있고, 때에 따라 주권 침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중국이 3년 안에 분쟁 수역을 포괄하는 행동강령을 완성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동남아 이웃 국가들을 안심시키는데 주력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 양국 모두와 경제, 외교적으로 관계가 깊은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 편을 들 경우 보복 조치 등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단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를 배치하자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침해한다며 보복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일대일로 사업의 경우에도 참가를 종용하는 중국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국 사이에서 고민이 적지 않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대일로 사업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일본의 참여에 대해 명시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미국의 눈치를 봤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양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이슈에 대해 선택을 강요할 경우 아시아 국가들이 중립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전날 미국-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제국 그리고 침략주의가 설 자리는 없다는 데 우리 모두 동의한다"고 중국을 겨냥한 뒤 "우리의 인도 태평양 비전은 어떤 국가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모든 국가가 이웃 국가와 그 나라의 주권, 그리고 국제법과 질서 존중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중국도 리커창 총리가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우군 확보에 전력한데 이이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는 시진핑 국가 주석이 바통을 이어 받는다. 미국 펜스 부통령도 APEC으로 무대를 옮겨 중국에 대한 강성 발언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