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44조원이 사라졌다" 증시·채권 동반추락…변곡점 맞은 세계 금융시장

세계 금융시장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세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동반 추락하면서 올 들어서만 수천조 원에 달하는 자산가치가 증발했다. 증시가 약세를 보이면 안전 자산인 채권시장에 돈이 몰리던 공식이 깨진 것이다. 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가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경기만 호조를 보이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통화 긴축에 나선 데 따른 이례적 현상이다. 2013년 세계 경제를 강타한 ‘테이퍼 텐트럼’(긴축발작·양적 완화 정책이 긴축으로 전환될 때 금융시장이 겪는 충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글로벌 채권시장의 벤치마크로 활용되는 블룸버그 바클레이즈 다중유니버스 지수는 연초 대비 5% 하락하면서 시가총액이 1조3400억 달러 줄었다. 세계 주요 주가지수로 구성된 파이낸셜타임즈스톡익스체인지(FTSE) 세계지수 시가총액도 3조6000억 달러 감소했다. 올해 세계 채권시장과 증시에서 5조 달러(약 5644조원)가량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이후 최대 규모로 추산된다.


특히 주식과 채권 시장이 동반 하락하는 것이 이례적이다. 통상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은 경기가 활황일 때, 안전자산인 채권은 경기여건이 나빠질 때 호조를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글로벌 증시 시가총액이 18조 달러 이상 사라졌을 때도 채권시장은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찾으면서 활황이었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배경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긴축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기 둔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경기만 호황을 보이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의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다른 주요국들도 덩달아 긴축기조에 가세하면서 주가가 하락하는 동시에 채권 가격도 하락(채권 금리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연준이 올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면서 3개월 만기 미 국채 금리가 10년 만에 최고 수준인 2.37%로 올라섰다.

주식과 채권의 동반 하락하면서 분산투자를 했던 투자자들의 손실 폭도 확대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달 주식과 채권 비중이 각각 60%와 40%로 구성된 투자 상품에서 평균 손실이 3%에 달했다. 이 때문에 긴축 발작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달러 강세로 신흥국에서 대거 자금이 빠져나가 일부 신흥국 등 약한 고리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회사 웰스파고에셋매니지먼트는 최근 분석보고서에서 "지난달 자본시장의 매도세와 위축된 투자심리는 2013년 긴축 발작 때와 비슷했다"면서 "강한 매도 압력이 투자자 대부분을 시장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세계 경기 둔화와 전 세계 금융시장 충격을 고려해 미 연준이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