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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당하기' 50번…두려움을 깼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대통령 인터뷰 요청' 등 3일간 일부러 거절당해보니…두렵고 창피하다가, 마음이 단단해졌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입력 : 2018.11.24 06:10|조회 : 48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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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하고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고 다니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비타민'을 나눠주려 두리번거리고 있는 기자. 누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주는 비타민을 받으려 할까. 당연히 거절당하고 싶어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 만은 않았다. 5명은 비타민을 거절했지만, 그보다 2배 많은 10명은 고맙다며 받아줬다. 역시 해보는 게 중요하다며, 두려움을 깬 계기가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셀프 카메라
모르는 사람에게 '비타민'을 나눠주려 두리번거리고 있는 기자. 누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주는 비타민을 받으려 할까. 당연히 거절당하고 싶어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 만은 않았다. 5명은 비타민을 거절했지만, 그보다 2배 많은 10명은 고맙다며 받아줬다. 역시 해보는 게 중요하다며, 두려움을 깬 계기가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셀프 카메라
'거절당하기' 50번…두려움을 깼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올해 첫눈이 올 거라던 21일 낮, 청계천 산책로는 을씨년스러웠다. 차가워진 바람이 얼굴을 연신 두드렸다. 이날은 서른 여섯번째 생일(生日)이었다. 청계천 초입에서 두리번거리는데, 한 중년 남성이 걸어왔다. 다가가 말을 건넸다. 온화한 미소와 함께. "안녕하세요, 오늘이 제 생일인데요." 순간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당황 않고 말을 이었다. "생일 축하 노래 좀 불러주시겠어요?" 남성은 어이 없다는듯 "네?" 하고 되묻더니, "바쁘다"며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감사합니다"하고 외쳤다. 예상대로 잘 되고 있었다.

청계천서 올라와 한 카페에 들어갔다. 점원이 친절하게 맞았다. 계산대에 다가가니 주문하시겠느냐 물었다. 주문 대신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첫눈이 온다고 하는데요. 죄송하지만, 코코아 한 잔만 공짜로 주실 수 있어요? 제가 눈 보면서 코코아 마시는 걸 좋아해서요." 눈이 휘둥그레진 점원은 당황한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침착하게 "공짜로 드리는 건 안된다"고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를 외친 뒤 재빨리 나왔다. 성공이었다.

보기 좋게 거절 당했는데 성공이라니. 엄청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었다. 최선을 다해 '거절당하기'를 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려견 똘이(4살, 몰티즈)에게 뽀뽀를 시도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래도 저렇게 리얼하게 싫은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을텐데. 아내가 찍어줘서 처음 알았다, 거절 의사가 명확하다는 걸. 상처 받았지만, 뽀뽀는 계속된다. 똘이야, 미안. 네가 귀여운 게 잘못이야./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반려견 똘이(4살, 몰티즈)에게 뽀뽀를 시도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래도 저렇게 리얼하게 싫은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을텐데. 아내가 찍어줘서 처음 알았다, 거절 의사가 명확하다는 걸. 상처 받았지만, 뽀뽀는 계속된다. 똘이야, 미안. 네가 귀여운 게 잘못이야./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거절이 두렵고 싫었었다. 불안하게 하고, 움츠러들게 했다. 시도조차 막을 때도 많았다. 중학교 1학년 때, 학원서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하얀 달걀 모양 얼굴에, 성격도 활발했다. 인기가 많았다. 칠판 대신 뒤통수를 빤히 보다,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피했다. 무관심한 척 했다. 반면, 늘 가운데 가르마를 하는 남자애 한 명은 달랐다. 쉬는 시간마다 그 여자애한테 가서 얼쩡거렸다. 사귀었는진 모르겠지만, 꽤 친했다. 부러웠다. 못난 나는 일년이 다 되도록, 끝내 말 한 마디 못했다. 거절도 없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기자 일도 그랬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인터뷰 하는 것도 쉽잖았다. "됐어요, 안해요" 한 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의욕 차서 동분서주했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왠지 잘 응해줄 것 같은 사람만 찾게 됐다. 전문가 조언도 그랬다. 가장 대안이 괜찮은 사람보다, 말 잘해주는 사람을 선호했다. 발제도 (kill, 얘기가 안돼 기사를 못 쓰게 되는 것) 당하지 않을지, 먼저 생각했다. 연차가 쌓일 수록 더 그랬다. 거절에 상처 받지 않을, '안전 범위'를 잘 알게 됐다. 불안은 줄었지만, 새로울 것도 크게 없었다. 매너리즘에 빠져갔다.
100일 동안 100번 거절당하기 실험을 한 중국인 블로거 지아 장이 테드(TED) 강연을 하는 모습.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두려움 속에 들어간 그의 모습이 영감을 줬다./사진=지아 장 유튜브 화면 캡쳐
100일 동안 100번 거절당하기 실험을 한 중국인 블로거 지아 장이 테드(TED) 강연을 하는 모습.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두려움 속에 들어간 그의 모습이 영감을 줬다./사진=지아 장 유튜브 화면 캡쳐

그러다 우연히 영감(靈感)을 받았다. 지난해 TV에서 '지아 장'이란 중국인 블로거를 봤다. 그는 다소 기이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경비원에게 100달러(약 11만원)를 빌려달라고 하고, 햄버거를 리필해달라고 했다. 말도 안되는 부탁이었다. 일부러 거절 당했고, 이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했다. 참신했다. 그처럼 거절에 직면해보고 싶었다. 두려움을 깨고 싶었다. 노트에 적어뒀지만, 1년 넘게 생각만 했다. 부끄럽고 엄두가 안 났다. 올해가 가기 전엔 도전해보고 싶었다. 맘을 단단히 먹고, 체헐리즘 발제로 질렀다. 다행히 거절 당하지 않았다. 부장이 발제에 더 관대해졌다. 지난번 체헐리즘 기사(☞'4살 똘이'와 하루를 보냈다)에 "이런 기사를 허락해 준 부장도 훌륭하다"란 댓글이 많았기 때문이다(독자들께 감사하다).

'거절당하기 체험'은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진행하기로 했다. 총 50번을 거절 당하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일부러 거절 당할만한 부탁 리스트를 정했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정하고, 거절 당한 뒤 '실험' 임을 밝히기로 했다. 난이도는 대상(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방식(대면, 비대면)에 따라 총 4단계로 나눴다.



경영지원실에 말했다, "연봉 1000만원만 올려주세요"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거절당하기 첫날, 눈 뜰 때부터 맘이 불편했다. 이상한 꿈도 꾸고 잠도 설쳤다. 아랫배가 긴장되는 게, 응가 마려울 때 느낌였다(TMI). 묘한 불안이 밀려왔다. 자존심 상하진 않을까, 욕먹진 않을까, 초조했다. 마음이 숨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다.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가 큰듯 했다. 시작도 안했는데, 빨리 끝내고 싶단 생각이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난이도 1단계'아는 사람에게, 얼굴 안 보고 거절당하기'였다. 절친에게 "5000만원만 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대답이 없었다. 다시 보냈다. 또 답이 없었다. 그래서 "왜 답이 없어 XX"라고 보냈다. 그랬더니 "차단했거든, 돈 빌려달라니까 차단 박아야지"라고 답장이 왔다. 기대도 안했지만, 생각보다 셌다. 그러면서 "5000원은 빌려줄 수 있다(이자 복리 10%로)"고 했다. 첫 거절이었다.
거절당하기 위해 친한 친구 A씨(36, 남)에게 메신저로 5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대답이 없어 재촉했더니,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차단한다고 했다. 당초 예상은 했지만 무척 건방졌다. 그래도 거절해줘서 성공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거절당하기 위해 친한 친구 A씨(36, 남)에게 메신저로 5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대답이 없어 재촉했더니,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차단한다고 했다. 당초 예상은 했지만 무척 건방졌다. 그래도 거절해줘서 성공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거절당하기는 계속됐다. 경영지원실에 연락해, 연봉 1000만원 인상을 요구하기로 했다. 협상 시즌이 다 지난터라, 황당한 부탁이었다. 그러면서도 '들어주면 좋겠다'며 속으로 은밀히 기대했다. 괜시리 전화기를 들었다놨다, 10분간 망설였다. 고민이 들었다. '진짜 이상하게 볼텐데'하는 불안이 몰려들었다. 뉴스 기사를 뒤적거리며 딴짓을 했다.

그러다 모 과장에게 어렵게 전화를 걸었다. "연봉 1000만원만 올려주실 수 있으세요?" 했더니 "네, 뭐라고요?"란 답이 돌아왔다. 놀란듯 했다. 그럼에도 그는 진지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경영진에서 결정하는 것이고…" 등의 설명을 친절히 해줬다. 실험이라 밝히고, 감사하다 한 뒤 끊었다.

난이도 2단계, '아는 사람에게, 얼굴 보고 거절 당하기'도 해봤다. 퇴근해서 아내에게, 진지하게 "회사 그만둬도 되느냐"고 했다. "당연히 안되지"라고 대답한 아내는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거절당하기 체험'이라고, 하나 채웠다며 웃었다. '등짝 스매싱(높은 볼을 강하게 때려 넣는 타법)'을 당했다.



'文대통령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에게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예상대로 거절당했다. 어떻게 요청했다면 다른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에게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예상대로 거절당했다. 어떻게 요청했다면 다른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난이도 3단계, '모르는 사람에게, 얼굴 안 보고 거절 당하기'로 넘어갔다. 기왕 하는 것, 평소 해보고 싶었던 걸 맘껏 해보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거절 당하려 하는 거라 생각하니 두려울 게 없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 요청을 하기로 했다. 거절 당할 확률이 컸다. 단독 인터뷰 한 국내 언론사는 여태껏 없었으니까.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국민을 대신해 묻는 게 기자인데, '만날 사람''못 만날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냐고. 어떻게 보면 두려움이 만든, 마음 속 벽이었다. 이를 한 번 깨보고 싶었다.

수소문 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연락처를 구했다. 그리고 전화했다. 모르는 번호라 그런지, 안 받았다. 요청부터 난관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문자를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를 할 수 있을지 여쭤보려고 연락 드렸습니다. 회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5시간 뒤에 김 대변인에게 "인터뷰 어렵습니다"라고 짧게 답장이 왔다. '거절'이었다.

성범죄자 조두순(65) 신상을 공개해달란 요청도 해봤다. 2008년 여아를 잔혹하게 성폭행해, 대국민 공분을 일으켰다. 하지만 당시엔 관련 조항이 없어 신상 공개가 안됐다. 2020년 출소 후에야 얼굴 등이 공개된다. 우선 경찰청에 연락해 "조두순 신상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관리를 법무부에서 한다"며 공을 넘겼다. 법무부에 다시 연락해 같은 질문을 했다. 관계자는 "신상 등록이 된 사람에 대해서만 말씀 드릴 수 있다"며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옷가게 가서 "원빈처럼 만들어달라"




스타OO 카페에 가서 &quot;커피를 리필해 줄 수 있느냐&quot;고 공손하게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 어이 없는 손님이라 여겼을 것이다. 거절 이유를 물어봤더니, &quot;사이즈 별로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리필이 어렵다&quot;고 했다. 이유를 들으니 덜 민망했다. 거절에도 예의가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br />
스타OO 카페에 가서 "커피를 리필해 줄 수 있느냐"고 공손하게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 어이 없는 손님이라 여겼을 것이다. 거절 이유를 물어봤더니, "사이즈 별로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리필이 어렵다"고 했다. 이유를 들으니 덜 민망했다. 거절에도 예의가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최고 난이도에 도전하기로 했다. 4단계, '모르는 사람에게, 얼굴 보고 거절당하기'였다. "거절 좀 당하고 오겠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리곤 무작정 회사 밖으로 나갔다. 서울 광화문·명동·종로 일대를 돌며 거절당하기로 했다.

명동 한 옷가게에 들어갔다. 직원이 힘차게 인사하며 맞았다. 어떤 옷 찾냐고 해서, 조심스레 "원빈(배우)처럼 만들어 줄 옷이요(죄송)"라고 했다. 직원이 진심으로 웃는 걸 봤다. 그래서 다시 진지하게 얘기했다. "원빈이 정말 잘생겼는데, 그렇게 만들어 줄 옷이 필요하다"고 했다. 직원은 "그런 옷이 뭔지 잘 모르겠다, 죄송하다"며 (비)웃었다. 죄송할 필요가 없다고 한 뒤, 가게 밖을 나왔다. 같은 의견이었으니까.

옷가게에서 나와 생전 처음 성형외과에 갔다. 상담 직원에게 "혹시 강동원(배우)하고 똑같이 성형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참고할 순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참고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게 똑같아야 한다"고 했다. 얼굴을 빤히보던 직원은 "그건 (도저히) 어렵다"고 거절했다. 제대로 볼 줄 아는 직원이었다.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이번엔 평소 생각해 봤던 것들을 부탁했다. 스타OO에 가선 "커피를 다 마셨는데, 혹시 리필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맥도OO에 방문해선 "평소 치즈버거를 정말 좋아하는데, 3개를 합쳐서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했다. 둘다 "그렇게는 안된다"고 거절 당했다. 약국에 가선 "뱃살 10kg를 한 달 내에 뺄 수 있는 약이 있느냐"고 물었다. 진심으로 사고 싶은 약이었다. 약사는 (코)웃음을 짓더니, "그런 약이 있으면 저부터 한 박스 사고 싶다"고 했다. 복부가 같은 상황인듯 했다.



'거절' 속엔 '승낙'도 있었다




거절당하기 체험을 하며 신났던 건,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맘껏 시도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마미손 래퍼에게 &quot;랩을 가르쳐달라, 사회 메시지를 담은 랩 가사를 쓰고 싶다&quot;고 요청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했다(오예).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quot;표현하고 싶은 내가 많은데, 한계가 느껴졌다&quot;며 복면을 썼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뭔가를 깨기 위한 도전이 멋있었다. 꼭 랩을 배우고 싶다./사진=마미손 인스타그램
거절당하기 체험을 하며 신났던 건,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맘껏 시도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마미손 래퍼에게 "랩을 가르쳐달라, 사회 메시지를 담은 랩 가사를 쓰고 싶다"고 요청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했다(오예).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표현하고 싶은 내가 많은데, 한계가 느껴졌다"며 복면을 썼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뭔가를 깨기 위한 도전이 멋있었다. 꼭 랩을 배우고 싶다./사진=마미손 인스타그램

당연히 '거절'을 예상했던 부탁이, '승낙'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 경험으로 '뭐든 일단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에 친한 동생에게 청첩장 받는 약속이 있었다. "형, 뭐 먹고 싶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순간 질렀다. "꽃등심 스테이크"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럽시다"라며 승낙했다. 이게 아닌데. 그래서 "네가 쏘는건데?"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니 "까짓거,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라며 괜찮다고 했다. '얘가 왜 이러지' 생각했다. 거절당하기 실패였다. "그냥 해본 말이다, 아무거나 먹자"고 했다. 점심은 삼계탕을 먹었다.

21일 생일날, 광화문 인근서 산책하던 시민 두 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생일인데, 혹시 잘생겼다고 해주실 수 있으세요?" 커피를 마시던 시민은 "뿜을 뻔 했다"며 웃었다. 그러더니 "잘..잘생겼어요"라고 해줬다. 물론 '선의(善意)의 거짓말'인 건 알지만. 그래도 괜찮은 생일선물이었다. 유쾌한 경험이었다. 앞서 겪은 여러번의 상처가, 한 번의 승낙으로 스르르 녹았다.

차일피일 미뤄뒀던 체헐리즘 아이템도 도전했다. '노인 체험''폐지줍기 체험'을 하고 싶었다. 노인 체험은 장시간 분장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폐지줍기 체험은 어떻게 섭외할 지 막막해서 놔뒀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풀렸다. 한 메이크업샵에 전화해 '노인분장'을 해줄 수 있냐고 물은 뒤, 체험 취지 등을 설명했다. 거절할 줄 알았다. 하지만 메이크업샵 대표는 "정말 좋은 취지의 기사"라며 협조해주겠다고 했다. 폐지줍기 체험도 관련 기관을 통해 할만한 분들의 연락처를 얻었다.

'마미손'으로 유명한 래퍼 측에도 연락을 했다. '랩을 배워 사회 메시지를 담은 가사를 쓰고, 직접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간 있었던 체헐리즘을, 올해가 가기 전 랩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평소 랩을 좋아하기도 했고, 재밌는 방식으로 소통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만 하고, 엄두도 못 냈었다. 당연히 거절 당할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래퍼 측에선 "재밌는 아이디어인 것 같다"며 "아티스트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검토 후 다시 말씀 드리겠다"고 연락이 왔다. To be continued(다음 호에 계속).



'왜 거절당할까' 고민했다




길거리서 '비타민 10개 나눠주기' 프로젝트. 첫번째는 &quot;됐다, 괜찮다&quot;며 보기 좋게 거절당했고, 두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세번째부터는 거절당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quot;고생하신다&quot;, &quot;비타민을 많이 샀다&quot;, &quot;직장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quot; 등 이유를 대며 줬다. 그랬더니 받기 시작했다. 1시간 만에 10포를 다 나눠줬다. 쉽지 않았지만, 거절당할 수록 단단해졌다. 그리고 조금씩 나아졌다./사진=남형도 기자 오른손
길거리서 '비타민 10개 나눠주기' 프로젝트. 첫번째는 "됐다, 괜찮다"며 보기 좋게 거절당했고, 두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세번째부터는 거절당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고생하신다", "비타민을 많이 샀다", "직장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등 이유를 대며 줬다. 그랬더니 받기 시작했다. 1시간 만에 10포를 다 나눠줬다. 쉽지 않았지만, 거절당할 수록 단단해졌다. 그리고 조금씩 나아졌다./사진=남형도 기자 오른손

계속해서 거절당하며 느낀 건, 거절에도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거였다. 반대로, 이유가 생기니 거절당할 확률이 줄었다.

레OO 비타민을 길거리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제품 하나를 샀더니, 10포가 들어 있었다. 하나씩, 10명에게 주기로 했다.

청계광장 인근서 한 시민에게 "혹시 비타민 드시겠어요?" 했더니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사라졌다. 첫 시도부터 실패였다. 횡단보도에 서 있던 또 다른 시민에게 "비타민 필요하시면 드릴까요?" 했더니 "필요 없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이유'를 만들어봤다. 서울시청 인근서 직장인에게 세 번째 시도를 했다. "제가 고생하는 직장인들에게 비타민을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비타민 필요하실 것 같아 하나 드리고 싶네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감사하다"며 받아갔다. 성공이었다. 버스기사에게도 "평소 고생 많은 분들에게 비타민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 받으시겠어요?"라고 했더니 받았다. 청계광장 관광객 2명에게도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며 2개를 줬고, 길거리를 청소하는 분에게도 "길을 깨끗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드렸더니 받았다. 그렇게 5번만 거절 당하고, 10포를 모두 나눠줬다.
추운 날씨에 낙엽을 쓰느라 분주했던 빌딩 미화원 분께 비타민 하나를 드렸다. &quot;고생이 많으신 분들께 드리고 있습니다&quot;라고 했더니, &quot;감사하다&quot;며 활짝 웃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거절이 두려웠다면 못 느꼈을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추운 날씨에 낙엽을 쓰느라 분주했던 빌딩 미화원 분께 비타민 하나를 드렸다. "고생이 많으신 분들께 드리고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감사하다"며 활짝 웃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거절이 두려웠다면 못 느꼈을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시민에겐 "죄송하지만 담배를 꺼달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며 담뱃불을 껐다. 그에게 "감사하다"며 비타민을 줬더니 받았다. 담배를 끈 것에 대한 보답이라는, 무언(無言)의 이유가 있었다.

'믿을만한 비타민'이란 걸 보여주는 방법도 썼다. 먹는 거라 수상한 걸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주머니서 꺼내다가, 시민이 볼 때 직접 제품상자에서 비타민을 꺼냈다. 시선이 거기에 머물렀고, 비타민을 받는 확률도 더 높았다.



'50번의 NO', 거절에 당당해졌다




거절당하는 게 일상이 되버린 전단지 나눠주는 아주머니들. 거절을 수없이 당하면서 느낀 건 거절을 하는 것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보험 영업 전화는 보통 &quot;바쁘다&quot;며 확 끊었는데, 거절을 당해본 이후엔 &quot;제가 들어놓은 보험이 많아서 죄송하다&quot;고 설명을 했다. 더 부드럽게 거절할 수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거절당하는 게 일상이 되버린 전단지 나눠주는 아주머니들. 거절을 수없이 당하면서 느낀 건 거절을 하는 것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보험 영업 전화는 보통 "바쁘다"며 확 끊었는데, 거절을 당해본 이후엔 "제가 들어놓은 보험이 많아서 죄송하다"고 설명을 했다. 더 부드럽게 거절할 수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렇게 체험이 모두 끝났다. 3일이란 짧은 시간에, 거절만 50번을 당했다. "안된다", "싫다", "괜찮다", "죄송하다", "어렵다", "됐다", "불가능하다" 등의 말들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평소에 몰랐던 감정들이 올라왔다. 수년치 거절을 한 번에 당한 느낌이었다.

거절당하기 초반엔 멘탈(정신)이 비스켓처럼 부서졌다.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힘차게, 또 단단히 준비해 부탁을 했다. 하지만 거절 한 마디에 그대로 무너졌다. '당연히 그렇지'란 생각을 하다가도, 거절 한 번이 마음을 후벼팠다. 상처도 받았다. '왜 이런 거절을 당하나'하며 자존심도 상했다. 그러면 움츠러들고, 자신감이 꺾였다. 부끄럽고 또 숨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혹시'란 기대감이, '역시'란 실망감으로 돌아올 땐 더 그랬다. 몸의 피로도 컸다. 부장은 "힘들어보인다, 멍 때리는 것 같다"고 했다. 아내도 걱정했다. 괜히 이상한 체험을 한다고 했나 잠시 후회도 했다.

포기하기 싫었다. 계속해서 시도했다. 빨리 50번을 채웠으면 좋겠단 맘으로. 그러다 보니, 거절이 점차 익숙해졌다. 다시 맘을 추스르고 부탁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점차 줄었다. 처음 거절당했을 땐 1시간씩 일 없이 돌아다녔다. 누구한테 해야 괜찮을까, 상처를 덜 받을까, 또 거절하진 않을까 안 좋은 생각만 하면서. 두 번 거절당하니 세 번째는 더 나았다. 10번을 넘어가니, 부탁이 편해졌다. 15번을 넘어가니 굳은 살이 배겼다. 거절당해도 기분이 크게 상하지 않았다. 30번을 넘어가니 거절당한 뒤에도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며 외치게 됐다. 놀라운 변화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났다. 거절이 두려워 못한 일들을, 맘껏 시도할 수 있어서. 갇혀 있던 공간을 깨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최악이래봤자 거절당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 뭘 시도하든 자신감이 생겼다. '거절당할까' 긴장했던 두근거림이, '또 뭘 해볼까' 유쾌한 두근거림으로 바뀌었다. 확실히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100일 거절 프로젝트'를 성공한 지아 장은 저서 '거절당하기 연습'에서 "우리는 거절의 공포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며 "계속해서 거절에 노출한 덕분에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거절 뒤에 숨어 있었던 기회를 발견하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실제 사업가를 꿈꾸던 그는, 거절과 직면한 덕분에 블로거에서 작가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강연하는 이로 거듭났다.

에필로그(epilogue). 언젠가 출근길 지하철을 탔던 기억. 앞에 나이 지긋한 남성이, 그 옆엔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남성은 눈을 감고 여성 쪽으로 계속 기댔다. 여성은 불편해보였다. 최대한 떨어지려 하다가, 결국 일어서서 갔다. 또 다른 여성이 앉았지만, 남성의 기대기는 계속됐다. 여성이 주의를 줘도 소용 없었다. 그걸 보는데, 광화문까지 오는 내내 맘이 불편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이런 상황을 보고도 아무 말 못하는 것이. 괜히 내게 뭐라고 할까 싶어 아무런 시도도 안하는 것이.

50번 거절당한 뒤 조금 달라졌다. 체험이 끝난 날 저녁, 지하철을 탔다. '핑크색 임산부석'에 한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때, 다른 역에서 여성 한 명이 타더니, 임산부석 앞에 섰다. 가방에 '임산부 배지'를 달고 있었다. 임산부였다. 남성은 눈치를 못 챘다. 고단한 지 눈을 감고 있었다. 용기를 내 그에게 다가갔다. 가슴이 뛰었다. 그리곤 말을 건넸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앞에 임산부가 서 계신데 자리 좀 양보해 주시겠어요?" 남성은 "아, 미안합니다"하며 자릴 양보했다. 임산부는 고맙다고 했다. 남성도 "얘기해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멋진 어른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두려움을 이기고, 말을 걸었다는 게. 그 용기로, 뭔가를 바꿨다는 게.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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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고혜원  | 2018.12.01 00:53

기사 글은 딱딱한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틀을 깨는 글이었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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