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 죽음이 돼 쓴 책" 고 허수경 시인 작품 재출간

머니투데이

황희정 기자

허수경 시인./사진 제공=문학과지성사

허수경 시인의 49재에 맞춰 그의 작품들이 재출간됐다.

21일 문학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3일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의 49재가 지난 20일 북한산 중흥사에서 동료 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다.

시인은 생전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부터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까지 시집 6권을 냈다. 이와 함께 소설·산문집도 여러 편 발표했다.

그중 장편소설 한 권과 산문집 한 권이 재출간됐다. 문학동네는 시인의 첫 장편소설 '모래도시'를 22년 만에 다시 펴냈다. 소설은 3명의 화자가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마치 시인처럼 고향과 가족을 떠난 세 사람의 만남과 회상, 각자의 모래도시 속에서 흩어져내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미지와 목소리로 포착해 눈앞에 펼쳐 보인다.

문학동네 출판그룹 계열사 난다는 2005년 9월 출간된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를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재출간했다. 1992년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떠난 시인은 오리엔트의 폐허 도시 바빌론을 중심으로 고대 건축물들을 발굴하는 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시인은 이 작품에 불멸을 탐한 인간 욕망의 부질없음을 탓하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으면서 한편으론 인간 본연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엮어냈다.

시인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던 이 책은 유서로도 읽히는 구절들이 담겨 있다.

"오래 죽어 있던 책./온전히 나였던 책./아프게 썼고, 처절하게 썼고,/무덤을 열고 들어가/나 스스로 죽음이 되어/모래 먼지의 이름으로 썼던 책."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독일에서 27년간 고고학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던 중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