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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친구에게 "사랑한다"고 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쑥스러워 숨겼던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고백해보니…같은 말들이 돌아와 따뜻해졌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입력 : 2018.12.01 06:10|조회 : 2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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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하고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고 다니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덕수궁 내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전화하는 척 하는 기자. 마침 '문화가 있는 날'이라 입장료가 공짜였다. 아날로그 분위기를 살려보려 컨셉을 잡았다. 기본 요금이 70원으로 오른 줄도 몰랐다. 첫사랑하는 학생 마냥,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오래 들고 있으니 전화기 속 여성이 '유얼 다이얼링 이즈 더 뤠잇, 플리즈 트롸어겐(다시 걸어라)'이라고 했다./사진=김건휘 인턴기자
덕수궁 내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전화하는 척 하는 기자. 마침 '문화가 있는 날'이라 입장료가 공짜였다. 아날로그 분위기를 살려보려 컨셉을 잡았다. 기본 요금이 70원으로 오른 줄도 몰랐다. 첫사랑하는 학생 마냥,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오래 들고 있으니 전화기 속 여성이 '유얼 다이얼링 이즈 더 뤠잇, 플리즈 트롸어겐(다시 걸어라)'이라고 했다./사진=김건휘 인턴기자
30년 친구에게 "사랑한다"고 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어이, 남기자. 돈 빌려달라고 전화했어?" 반가운 목소리, 고등학교 친구였다. 18년이 흘러도 그대로였다. 고2 때 같은 반이었던 녀석. 번호가 비슷했고, 자리가 가까웠다. 그래서 친해졌다. 공부는 내가 더 잘했다(자의적 해석). 성실했던 친구는, 은행원이 됐다. 결혼해서 애 둘을 낳았다. 각자 살기 바빠졌다. 그리고 싱가포르로 떠났다. 얼굴 못 본 지 수년이 됐다. 가기 전에도 못 봤다. 연락도 잘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무심(無心)했다. 마음은 안 그랬는데.

할 말 있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할 말 있으니 전화했겠지, 맨날 바쁘다고 하고." 핀잔이 돌아왔다, 서운함 섞인. 그래서 바로 고백했다. "OO야, 사랑한다." 친구가 당황한듯 했다. "XX 무섭네, 왜 무섭게 그래."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아 왜, 나도 사랑해. 근데 왜." 처음이었다. 이런 얘길 해본 것도, 들은 것도. 좋았다. 오그라든 손은 내 몫이었지만. 어물쩡 넘기려 했다, 친구끼리 그런 얘기 괜찮지 않냐며. 그리고 고마움도 표현했다. "수능 다시 볼 때, 네가 초콜렛이랑 챙겨줬잖냐. 그 때 고마웠다." 친구는 뻐기며 답했다. "내가 너 사람 만들었지, 키웠잖아. 빚진 마음으로 살아." 그러면서도 걱정되는 듯 계속 물었다. "아, 이 XX 뭔데. 왜 전화했어? 그것 때문에 전화할 리 없잖아?"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맘 속에 꼭꼭 묻어놨던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간 못했던 이유는 많았었다. 바빠서, 쑥스러워서, 타이밍을 놓쳐서. 언젠간 해야지, 차일피일 미뤘었다. 그러는 새 시간은 참 빨리갔다. 정신 차려보니 올해도 12월1일. 아니, 더 돌아보면 몇 년, 몇십 년간 표현을 못했다. 가까울 수록 더 그랬다. 으레 '말 안해도 알겠지' 하면서.

이런 말들은, 마지막 순간에야 나온다고 했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을 때. 지난 4월, 호주 퍼스서 시드니로 향하던 비행기 안. 급격히 흔들리던 기체가,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승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가족·연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엄마, 너무 사랑해. 먼저 가서 미안해." 다행히 비행기는 비상 착륙했다. 특히 "사랑한다"는 말은, '가장 듣고 싶은 말(18.5%, 서울여성가족재단, 서울시민 1100명 조사, 2015년)'이면서 '가장 하기 힘든 말(41.3%, 알바몬, 대학생 2050명 조사, 2018년)'이라고 했다.
MBC라디오 '푸른밤, 옥상달빛'에서 '사랑해 체험'을 진행했다. 정말 말하기 힘든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간이었다. 방송을 마친 뒤, 어색하게 사진을 찍었다. 옥상달빛 두 분은 잘 나왔는데, 나만 두 턱에 못 나와서 블러 처리를 했다./사진=MBC 푸른밤 이상은 작가
MBC라디오 '푸른밤, 옥상달빛'에서 '사랑해 체험'을 진행했다. 정말 말하기 힘든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간이었다. 방송을 마친 뒤, 어색하게 사진을 찍었다. 옥상달빛 두 분은 잘 나왔는데, 나만 두 턱에 못 나와서 블러 처리를 했다./사진=MBC 푸른밤 이상은 작가

그리고 체험을 결심한 계기. 우연히 라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MBC라디오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였다. PD, 작가가 체험한 얘길 들려달라며, 라디오 부스서 체험을 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사랑해" 체험이었다. 정말 말하기 힘든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였다. 그것도 밤 11시에. 나는 23년 친구에게 뜬금 없이 말했다. "사랑한다고 XX". 비속어만 날아올 줄 알았는데 "나도 사랑해"란 답이 왔다. 다른 청취자들 사연도 재밌었다. 회사 사장에게, 집주인에게, 옆에 있는 언니에게 보냈다고. 쑥스런 고백과 더 쑥스런 답장이 오갔다. 밤 공기가 따뜻해졌다.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해보기로 맘 먹었다. 11월26일부터 29일까지 체험했다. 총 15명에게 그간 못했던 표현을 해봤다. 전화를 해서 직접 말하기로 했다. 안 받으면 메시지를 남기기로 했다.



엄마·아빠에게 "사랑해"…36년 만이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먼저 하기로 했다. 아내에겐 늘 하루 시작과 끝에 "사랑해"라고 했었다. 출근할 때, 그리고 잠들기 전에 얼굴 보며 직접 말했다.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일상이 됐다. 체험이랄 것도 없이, 늘 하던 것처럼 "사랑해"라고 했다. 이유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고 했다. 그저 하루가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쉬울만큼, 행복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내는 "립서비스를 잘한다"면서도 "나도 사랑해"라고 했다.

그 다음엔 엄마, 아빠. 이제부터가 '고난이도' 시작이었다. 편지 말미엔 써봤지만, 직접 말해본 적은 없었다. 너무 쑥스러웠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쁘다고 자주 연락도 못했다. 바로 말하려 했는데, 목구멍에 걸렸다. 입이 안 떨어졌다. 다른 얘길 했다. '겨울 휴가' 얘기였다. 올해 가기 전 연차를 써야해서, 여행을 간다고 했다. 잘 다녀오라며 당부가 쏟아졌다. "옷 잘 챙겨입어라", "밤에 다니지 말아라", "상비약 잘 챙겨라" 등. 어릴 때 듣던 말들이 생각났다. 집 밖을 나설 때면 늘 "차 조심해"라고 했었다. 그리곤 엄마 무릎 얘길했다. 요즘 안 좋아서 바깥에 잘 못 다닌다고 했다. "오래 썼으니 그렇지"란 말에 속상해졌다. 그렇게 20분을 망설이다 겨우 말했다. "엄마, 근데 말할 게 있는데." "뭔데, 말해." "사랑한다고." 엄마가 웃더니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지?"라고. 36년 살면서 첨이었다. 소리내서,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본 건.

아빠에겐 전화가 먼저 왔다. 잘됐다 싶어, 바로 말하려했는데 역시 말이 안 나왔다. "아픈 데는 없지?", "일은 괜찮고?" 아빠는 늘 그랬듯 안부를 물었다. 젊을 땐 호랑이 같았는데,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만큼 세월이 흐른 거였다. 20대 후반, 일을 시작하며 아빠를 이해하게 됐다. 왜 그렇게 바빴는지, 아플 때도 기어코 출근했는지, 술 마시고 온 날에만 수염난 얼굴을 부볐는지. 통화할 땐 말 못하고, 문자로 다시 남겼다. "아까 전화할 때 말 못했는데 사랑해요." 5시간 뒤 답장이 왔다. "형도야, 나도 사랑해."

장모님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세 번 걸었는데, 통화 중이었다. 그리고 오후 5시쯤 전화가 왔다. "남서방, 전화했었어?" 겨울 휴가 얘길 나눈 뒤 운을 뗐다. "어머님, 올 한해 맛있는 반찬도 해주시고 여러모로 따뜻하게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장모님은 손사래를 쳤다. 잘해주지도 못했다고, 돈 버느라 힘들다고. 덕담이 오간 뒤 끊을 위기가 찾아왔다. 재빨리 말했다. "어머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머뭇) 사랑합니다." 그리고 장모님 대답. "으흥흥흥, 나도 사랑해. 고마워."

마지막으로 장인어른에게도 전화했다. 제일 떨렸다. 아내가 "아빠가 싫어할 수도 있어"라고 했었다. 그래도 좋아하실 거라며 고집을 부렸었다. "그래, 어쩐 일이냐." "아버님, 연말이라 가까운 분들께 연락 드리고 있습니다." "아, 그래. 잘하고 있다." 짧은 대화가 오갔다. 올 한 해 잘 챙겨주셔서 감사하다 했더니 "더욱 열심히 분발해라(열정적인 걸 좋아하심)"라고 했다. 그리곤 눈을 질끈 감고 질렀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따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고맙다" 1분 만에 전화를 끊었다. 부끄러워서.



절친들에 "사랑한다" 했더니…"이거 뭐야, 기사지?"




친한 친구에게, 사랑한다고 했더니 보였던 반응. 블러 처리한 부분은 비속어다. 그래도 사랑한다고 똑같이 말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뭘 좀 아는 녀석이었다. 친구가 쓴 이모티콘은 '공짜콘'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친한 친구에게, 사랑한다고 했더니 보였던 반응. 블러 처리한 부분은 비속어다. 그래도 사랑한다고 똑같이 말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뭘 좀 아는 녀석이었다. 친구가 쓴 이모티콘은 '공짜콘'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친구들 차례였다. '30년 친구'가 생각났다. 죽마고우(竹馬故友: 어릴 때 아주 친했던 벗)였다. 여섯살 때 첨 알았다. 이사 왔더니, 옆옆집에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붙어 살았다. 놀다가 졸리면 그냥 거기서 잤다. 서로 집 구분이 없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는 따로 갔지만 여전히 친했다. 동네서, 한강에서 맥주 한 캔씩 했다. 서로 도움 안되는 연애 조언을 주고 받으면서. 친구는 취직도, 결혼도 빨리했다. 결혼식 사회도 봐줬었다. 이젠 두 아이 아빠가 됐다. 바빠서 못 본지 2년 가까이 됐다.

오랜만에 전화했더니, 대뜸 "왠일이야, 뭐야"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것도 '체헐리즘' 아냐? 녹취되는 것 같은데"라고 했다. 눈치가 빨랐다. 깜짝 놀랐다. 기사 보고 있냐고 했더니, "네가 쓰는 건데, 당연하다"고 했다. 가족들도 읽는다고. 고마웠다. 밀린 안부를 묻다, 세월에 대한 얘길 했다. 우리도 서른 여섯이다, 너랑나랑 안 지 벌써 30년 됐다, 시간 참 빠르다고. 첫째가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했다. 일 얘기도 했다. 근무시간이 매주 달라 힘들다고.

고맙단 얘기부터 했다. 무려 24년 전 일이었다. 놀이터서 놀다 다쳤던 적이 있었다. 놀이기구 쇠줄이 끊어진 걸 모르고 놀다, 이마에 맞았다. 저녁이라 안 보여서 몰랐다. 아찔하는 순간, 이마에 뜨거운 게 흘렀다. 땀인 줄 알고 닦았더니 피였다. 그 때 친구가 손으로 막아줬다. 용기내서 "그 때 고마웠다"고 했더니 "그랬냐,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이 녀석이). 그리고 시간을 최대한 끌다가, "사랑한다"고 했다. 낯 뜨거워 빨리 끊고 싶었다. 친구도 피식 웃더니 말했다, "나도 사랑한다."

라디오 '사랑해 체험' 때, 사랑한다 했던 친구에게도 연락했다. 초·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동네 친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주먹질하고 싸우기도 했었다(내가 이겼다, 내 맘대로). 이후 금세 친해졌다. 앞 동에 살아서 맨날 봤었다. 대화의 98.5%가 '헛소리'였다. 학창 시절엔 3시간 넘게 노래방서 소리를 지르고(부른 것 아님), 새벽까지 게임도 했었다. 아무 일 없이도 언제든 볼 수 있는, 허물 없는 친구였다. 체헐리즘에도 자주 등장했다. 타투한 팔목을 보여줬더니 'X나 X신 같은데'라고 했다. '진짜 친구'란 댓글이 많았다.

전화는 오랜만이었다. 뭐하냐고 했더니, "뭘 뭐해, 회사지"라고 했다. 늘 그랬듯 편했다. 그냥 전화했다고 했더니 "다 목적과 이유가 있어 전화했겠지, 돈 필요하냐, 빨리 본론부터 얘기해"라고 했다. 서로 웃음이 터졌다. "동네 오면 연락한다더니, 왜 안하냐"는 핀잔도 이어졌다. "담에 하겠다"고 했더니, "3년 전에도 그 얘기했다. 그냥 사이버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또 웃음이 터졌다. 야밤에 사랑한다 했을 때, "이 XX가 미쳤나"라고 생각했단다. 맘껏 웃고, 개운해졌다.



"고맙다"고 했더니, "기분 되게 좋다, 감동이야"




지금 회사로 오게해 준 선배에게 처음으로 "고맙다"고 표현했다. 힘든 시기에, 회사를 옮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새해에 밥 먹을 약속을 잡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지금 회사로 오게해 준 선배에게 처음으로 "고맙다"고 표현했다. 힘든 시기에, 회사를 옮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새해에 밥 먹을 약속을 잡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사랑 고백이 끝나고, 고맙다 말할 차례였다. 스마트폰 연락처를 보며, 회상했다. 고맙다 늘 생각했지만, 차마 말 못한 일들을.

'회사 선배'가 생각났다. 4년 전 여름, 지금 회사로 오게해 준 선배였다. 이전 회사에서 많이 힘들 때였다. 경험치로도 견디기 힘든, 불합리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모르는 뒷담화가 오갔고, 사람을 못 믿게 됐다. 마음 속 병(病)도 났다. 잠도 잘 못 자고, 살도 10kg 가까이 빠졌다. 빨리 떠나고 싶은 맘 뿐이었다. 그 때 선배를 만났다. 별 것 없는데 좋게 봐줬고, 들어오는 데 힘이 되줬다. 들어와선 같은 팀이었다. 취재도, 기사 작성 기본도 많이 알려줬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얻은 게 많았다.

오랜만에 연락해 안부를 물었다. "이런 훈훈한, 체헐리즘이야?"라며 선배가 웃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많이 쑥스럽겠다"고 했다. 건강 잘 챙기라는 덕담이 오갔다, 오래 뛰려면 건강해야 한다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선배 덕분에 회사 잘 옮겼다고, 힘든 시기에 감사했다고. "에이 뭘, 옮기려고 각오한 네 스스로 덕분이지"라고 답했다. 이어 "야, 진짜 쑥쓰럽겠다, 기분은 되게 좋다. 나도 너무 고마워"라고 했다. 새해에 점심 먹자고, 날짜를 잡았다.

아내를 소개해 준, '친한 동생'에게도 연락했다. 방송작가였다. 동생 SNS서 우연히,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봤다. 조용히 '좋아요'를 눌렀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동생이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했다. 근데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내 얘길 꺼냈다. "왠지 설명하기 힘든, 강력한 끌림이 있다고. 단지, 예뻐서만은 아니라고(물론 예쁘지만)." 웃음이 터진 동생은, 적극 추진해줬다. 첨엔 소개팅을 고사하는 아내를 설득했다고 했다. "법(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정말 괜찮은 오빠"라고(잘했어).

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4살 아들,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냈다고 했다. "언니랑 어찌 그리 꽁냥꽁냥 잘 사냐,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다, 맨날 신혼이야"라고 했다. 그간 못했던 얘길 길게 했다. 애 키우고, 서로 잘 지내다 싸우기도 하고, 일하며 돈 벌고. 평소 고마웠던 맘을 전했다. "제일 감사해야 할 사람이 OO인데, 맘이 늘 그랬다. 아내하고도 맨날 그런 얘길한다. 연락 자주 못해서 미안하다"고. 동생은 "사는 게 다 그렇다, 그런 맘 가질 것 없다"고 나무라며 "정말 감동"이라고 했다. 그리고 "SNS도 안하면서, 왜 자꾸 음식 사진만 올리냐"고 묻기에 "볶음밥, 음료수 공짜로 받으려 그런다"고 했다. 동생은 "해킹 당한 줄 알았다"고 했다. 같이 웃었다.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몇년 만에




한 명씩 전화해서 그동안 못했던 말을 하려 했는데, 맘처럼 쉽잖았다. 오전이 다 가도록 전화 목록은 빈 칸이었다. 가져간 동전도 그대로였다. 애꿎은 재발신만 계속 눌렀다./사진=남형도 기자
한 명씩 전화해서 그동안 못했던 말을 하려 했는데, 맘처럼 쉽잖았다. 오전이 다 가도록 전화 목록은 빈 칸이었다. 가져간 동전도 그대로였다. 애꿎은 재발신만 계속 눌렀다./사진=남형도 기자

미안했던 이들도 많았다. 대학교 동기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학교 방송국에서 만났다. 2년간 '동고동락(同苦同樂)' 했다. 고된 방송국 수습 기간, 방학 때마다 하는 트레이닝, 후배들 교육을 같이 견뎠다.

중간에 일주일, 방송국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생각도 많아서, 못하겠다고 했었다. 그 때 다시 붙잡아 준 것도 동기였다. 힘든 시간을 보낸 게 아깝지 않느냐고. 끝까지 잘 견디자고 했다. 그 말에 힘이 났었다. 돌아온 뒤엔 구박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다시 와서 좋다고 했다.

몇 년 전, 동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급한 취재 때문에 챙기지 못했다. 사실 어떻게 말하든 '핑계'였다. 어떻게 하든 갔어야 했다. 부모님도 늘 가르쳤다, 기쁜 일은 못 챙겨도 힘들 땐 챙기라고. 그런데 못 갔다. 너무 미안해서, 그 뒤론 연락도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 맘에 계속 걸렸다. 미안하단 말 한 마디가 어려워서, 용기를 못 냈다.

동기에게 연락했다. 첫 마디가 "누구시라고요?" 였다. 번호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름을 얘기했더니 "깜짝이야"라고 했다. 그러더니 "난 왜 번호가 없지?"라고 했다(그걸 왜 내게 물어). 기사를 자주 본다고 했다. '이상한 짓'을 많이 하고 다닌다고. 그러면서 "이번주 이상한 짓은 뭐냐, 혹시 돈 빌려달라고 전화하는 거냐, 피싱에 몇 명 속나 이런 거 하느냐"고 했다.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말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못 갔잖아, 정말 미안했다"고. "뭘 미안해, 일이 있으면 못 올 수도 있지"라며 "신경 쓰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렇게 풀릴 일이었다. 동기는 그러면서 "반갑다,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라고 했다. 얼굴 보자고 했더니 "그러고 안 볼 거지?"라고 답했다. 또 웃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망설이고, 또 망설였지만…




아내에게 쓴 손편지. 하루 시작과 끝에는, 꼭 사랑한다고 마음을 표현하려 한다. 인생 마지막 순간에 꼭 하고 싶은 말들이라면, 평소에 많이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맘을 나누고 있다. 쑥스러워서 내용은 블러 처리했다. 다 읽으면 손을 펼 수 없기 때문에./사진=남형도 기자
아내에게 쓴 손편지. 하루 시작과 끝에는, 꼭 사랑한다고 마음을 표현하려 한다. 인생 마지막 순간에 꼭 하고 싶은 말들이라면, 평소에 많이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맘을 나누고 있다. 쑥스러워서 내용은 블러 처리했다. 다 읽으면 손을 펼 수 없기 때문에./사진=남형도 기자

이렇게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체험이 끝났다. 아직 마음 못 전한 이들도 남긴 채.

낯간지러운 걸 싫어해서, 참 쉽잖았다. 전화한 시간보다, 망설인 시간이 더 길었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무슨 말할까 생각했다가, 다시 내려놨다. 마음을 먹고 또 먹어야 했다. 전화 해놓고도 말이 잘 안 나왔다. 딴 얘기만 잔뜩하다가, 빙빙 돌리다, 머뭇거리다가, 마음 표현은 부리나케 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달아올랐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익숙지 않나 싶었다.

하릴 없이 반나절을 보내고 난 뒤, 전문가 얘길 들어봤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에게 전활 걸어 물었다. 사랑하는, 가까운 이들에게 왜 이렇게 표현하는 게 힘든지 모르겠다고. 곽 교수는 "연습이 안되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까울 수록 사랑하거나 좋아하거나 그런 마음도 크고, 갈등이 생길 땐 심하게 생긴다"며 "가족이란 건 끊을 수 없는 관계란 걸 알아서, 심한 말만 하지 좋은 말은 안한다"고 했다. 곽 교수는 "외국 사람들은 집 나설 때 뽀뽀하고 안고 하지 않느냐"며 "그런 습관을 계속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갈등에 대해선 "빨리 미안하다고 해야지, 나중엔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용기를 내봤다. 정말 연습이 됐다. 처음만 힘들지,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굉장히 따뜻한 경험을 했다. 말이란 게 신기한 기운이 있었다. 마음은 늘 그랬는데, 이걸 꺼내 놓으니 또 달랐다. 말을 뱉는 것만으로 상대방과 나 사이, 공기 온도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서로 통했고, 이어졌다. 마음이 달달하고, 또 따뜻해졌다. 소중한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계속된 통화에 기운이 빠졌지만, 기분이 좋아 날아갈듯 했다. 그래서 지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해주는 사람도 많단 생각에 행복했다.

마음 표현보다 더 좋았던 건, 그냥 연락하는 그 자체였다. 오랜만에 사는 얘기를 듣고, 또 안부를 물었다. 통화 한 번에, 길게는 1시간씩 했다. 전화가 끊어질 줄 몰랐다. 그래서 지금껏 한 체험 중 시간이 가장 많이 걸렸다. 전화 중간중간에도 서로 "바쁘지 않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앞으로도 여전히, 바쁘겠지만, 서로 챙기고 표현할 시간 정도는 갖자고 다짐했다. 유쾌한 송년회도, 술자리도 좋지만, 이렇게 연말을 마무리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동전이 들어있는 공중전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동전이 떨어지기 전에 할 말을 해야하는데, 삶에서도 그런 게 아닐까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겠다고./사진=남형도 기자
동전이 들어있는 공중전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동전이 떨어지기 전에 할 말을 해야하는데, 삶에서도 그런 게 아닐까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겠다고./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ugue). 누구한테 사랑한다 말할까, 오래 고민 했다. 그러니 사랑한다 말 못했던 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외할머니는 여든 다섯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사랑한다 말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뵀었다.그날 함께 있는 동안에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할머니는 언제든 뵐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으니까

17년 키우다 떠나보낸 강아지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짓궂게 장난치는 게 사실 다 사랑이었는데, 표현을 하지 못했다. 무지개다리 건넌 날,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다. 산책하기 귀찮아했던 게 미안해서, 사랑한다 충분히 말하지 못한 게 아파서.

언제나 할 수 있었던 말, 하지만 언제까지나 할 순 없는 말. 한 없이 있을 것 같아 아꼈다가, 한(恨)으로 남기도 하는 말. 아무래도 사랑한다고 말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지금인 것 같다.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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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김민서  | 2018.12.15 21:23

정말 잘 보구있습니다 기자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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