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시절 블랙리스트 보니…"인권위는 문제위원회, 건전화 해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0층 브리핑실에서 열린 '인권위원회 블랙리스트·장애인활동가 사망 진상조사 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와 경찰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건에는 인권위를 '과거 문제위원회'로 낙인 찍고, 소위 '인권위 건전화'를 청와대 주요업무로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러한 블랙리스트를 인권위 간부에게 전달하기까지 했다.



인권위는 이 전 대통령 등 관련자들을 검찰에 수사의뢰하기로 했다.

인권위는 11일 서울 중구 인권위 10층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같은 내용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올해 2월 인권위 혁신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시절 발생한 '인권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를 권고한 것을 계기로 7월부터 11월까지 자체진상 조사단을 꾸려 조사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이 블랙리스트 출처는 2008년 경찰청 정보국과 2009·2010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2곳이다.


2008년 작성된 경찰청 정보국 문건에는 인권위 직원을 진보와 보수로 분류하고 인적 쇄신을 통해 이념적 편향성을 조정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청와대가 만든 블랙리스트는 인권위 간부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은 "2009년 10월 청와대 직원(현진권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이 '현 정부와 같이 갈 수 없는 사람'이라며 인권위 직원 10여명의 인적사항과 경력이 기재된 서류를 당시 사무총장에게 전달했고 사무총장은 이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라는 의미'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직원 가운데 실제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사람은 2명으로 확인됐다. 조 사무총장은 "10명 가운데 5명의 실명을 확인했고 이 가운데 별정·계약직 공무원 2명은 면직, 2명은 자진 퇴사했으며 나머지 1명은 여전히 근무 중"이라고 밝혔다.

조 사무총장은 "면직과 퇴사가 블랙리스트에 따른 것인지는 명확히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당시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 직제 축소로 시민사회단체 출신 별정직 공무원들이 면직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올해 10월 검찰의 영포빌딩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알려진 '2010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업무계획 보고문건'도 청와대 블랙리스트일 것으로 판단했다.

조 사무총장은 "2010년 보고문건은 인권위를 '과거 문제위원회'로 낙인 찍고 인권위 건전화를 시민사회비서관실 2010년 주요업무로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연내 이 전 대통령과 현진권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 블랙리스트 문건 관련자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할 계획이다. 다만 직권남용의 공소시효가 7년이어서 실제 검찰 수사가 이뤄지더라도 관련자들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인권위는 이날 우동민 장애인 인권활동가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우 활동가는 2010년 11월22일부터 12월10일 서울 중구 인권위 11층 배움터에서 점거농성을 한 뒤 2011년 1월2일 폐렴으로 사망했다.

장애인인권활동가들은 인권위가 점거농성 당시 농성장 난방과 전기 공급을 끊고 활동보조인의 출입을 제한해 우 활동가가 사망했다고 주장해왔다.

조 사무총장은 "인권위가 사전 조처를 하지 않아 경찰이 활동보조인 출입을 막았고 난방도 공급하지 않아 중증 장애인 활동가들이 장시간 추위에 노출됐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인권옹호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위 차원의 인권옹호자 선언을 채택하고, 인권친화적인 점거농성 대응매뉴얼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권위 또한 인권위 건물 내부에 이 사건을 기록한 동판 등을 설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