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일의 건설이야기] 연봉 3억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의 조건

건설기업이 입찰을 통해 수주한 공사를 수행하기 위해선 관련 보증서를 발주처에 제출해야 한다. 건설공제조합은 이 같은 보증서를 발급해 주는 기관이다. 1963년 설립된 건설공제조합은 건설업 면허를 가진 건설기업들이 출자한 상부상조 단체다.

조합원수는 1만2000여사에 달하고 출자좌수도 400만좌에 육박한다. 자본금 규모는 5조8000억원이 넘는다. 연 매출은 4500억원 정도이며 주된 사업은 보증서 발급, 융자 업무, 공제사업 등이다. 예·적금이나 채권 투자도 한다. 안전자산에 투자한다곤 하지만, 한때 은평뉴타운 등에 투자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건설공제조합은 지난 10월 29일 총회를 통해 언론사 간부 출신인 최영묵씨를 18대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건설과의 인연은 한 대형 건설기업에서 홍보위원(부사장급)으로 활동한 것이 전부다. 당시 전문성보다는 현 정권 내 같은 언론사 출신 인사들이 추천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로써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직은 직전 17대 이사장을 지낸 박승준씨에 이어 연속으로 정치권을 통해 채워졌다. 사실 ‘보증’이 주 업무인 건설공제조합에서 전문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보증서는 기본적으로 해당 업체의 재무 건전성 등을 점검해 발급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미 50년 넘게 축적된 시스템이 있으니 별 어려움이 없기도 하다.

건설공제조합 노조는 최 이사장 선임 전인 지난 10월 내내 본사가 위치한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 강행하는 청와대는 각성하라. 조합 생존권 위협하는 이사장 낙하산 인사 반대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고 선임 반대 투쟁을 했다.


점심시간엔 북까지 치며 건설회관을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머리띠를 두르고 피켓 시위도 했다. 늘 그랬듯이 노조는 이사장 선임 즈음에 반대 투쟁을 접었다. 노조와 이사장 간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 지는 알려진 게 없지만, 이유없이 피켓과 대자보를 거둬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추측만 있다.

건설공제조합은 11대 조덕규 이사장부터 16대 정완대 이사장까지 국토교통부(옛 건설교통부 포함) 출신들이 잇따라 이사장직을 수행했다. 업무 연관성을 앞세워 나름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이전에는 군과 경찰 출신들도 이사장을 지냈다.

2000년대 초 단체협약을 통해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은 조합의 이익금이 일정 금액을 넘으면 상당액의 보너스를 받는다. 이 같은 성과금 등을 포함하면 이사장의 연봉 총액은 3억원이 넘는다. 업무추진비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직은 은퇴를 대비한 퇴직금을 받아가는 자리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였다.

건설공제조합 감사는 청와대 경호처 출신들이 오랜기간 차지하고 있다. 일부 감사의 경우 해외 행사를 핑계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건설업계는 현재 사면초가 상황에 내몰려 있다. 토목을 중심으로 한 공공공사 발주는 갈수록 줄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입찰제도는 개선되지 않은 채 낙찰가율은 계속 떨어져 원도급사는 물론 하도급사도 고통받고 있다.

발주처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제때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방치된 공공공사 현장을 지키려고 건설업체들은 조 단위의 간접비를 지출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주기는커녕 관련 규정 문제로 최근 대법원에서 패소하는 등 곤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공제조합의 기능과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신임 이사장 역시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으려고 왔다면 오산이다.

건설공제조합은 단순히 임직원만을 위해 만든 조직이 아니다. 건설업계가 공존하고 산업 발전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의무도 있다. 건설인들이 신임 이사장을 지켜보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