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분당·고양 등 열수송관 203곳 '이상징후'…정밀점검

황창화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과 임직원들이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고양시 백석역 인근 열수송관 누수 사고와 관련해 국민과 유가족, 사고피해자 등에게 죄송하다며 허리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4일 고양시 백석역 인근 열수송관 누수 사고를 계기로 전국의 20년이 넘은 열수송관을 전수 조사한 결과 총 203곳에서 '이상징후'가 발견됐다. 문제 지점은 서울 반포·여의도와 경기도 분당, 고양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이번 사고와 같은 공법을 활용한 곳도 443개 지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창화 한국지역난방공사 (39,100원 ▼200 -0.51%) 사장은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같은 내용의 노후 열수송관 긴급점검 결과와 정밀점검계획을 설명했다. 황 사장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조직·인력·예산·매뉴얼·업무방식·의식 등을 대폭 개혁하겠다"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공사는 내년 1월말까지 종합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노후 열수송관 203곳 '이상징후'…정밀점검 착수=공사는 사고 발생 다음날인 5일부터 12일까지 설치 20년이 넘은 열수송관 686㎞ 전체 구간에 대한 점검을 마쳤다. 열화상 카메라를 활용한 점검 결과 총 203곳에서 지열차가 발생하는 '이상징후'가 발견됐다. 땅 속에서 온수가 누출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사업소별로 보면 서울 여의도, 상암, 반포지역 일부 등 중앙지사가 관할하는 구역이 78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분당지사 49곳 △고양지사 24곳 △강남지사 18곳 △용인지사 15곳 △대구지사 12곳 △수원지사 7곳 순이었다. 공사는 지열차가 큰 16개 지점에 대해선 즉각 굴착해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고양지사 관할이 6곳, 분당지사가 4곳으로 1기 신도시 지역이 다수였다. 나머지 지점은 내년 1월12일까지 정밀진단에 들어간다.

공사는 이번 사고가 열수송관 구간 연결부 용접부위가 떨어져 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가 발생한 열수송관은 1991년 매설됐는데, 연결구간 용접부 덮개의 내구성이 낮아지면서 손상됐다는 설명이다. 이 덮개는 2002년 이전 사용된 온수예열공법에서 쓰였다. 정확한 덮개 파열 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조사 중이다. 용접 과정에서 부실이 있었거나 매설 후 지반 침하 등으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백석역과 동일한 공법으로 시공된 곳은 전국 443개 지점에 달한다. 이 중 약 80%는 수도권에 위치한다. 공사는 이 지점에 대해서도 지난 12일부터 긴급점검에 착수했다. 내년 3월말까지 모든 지점을 굴착해 용접부 상태를 점검하고, 보강공사 또는 교체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황 사장은 백석역 사고에 대해 "공사 설립이래 단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초유의 사고 유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전에도 배관의 크랙(금)이 가는 누수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폭발하듯 급격히 온수가 분출된 적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런 대형사고를 경험해보지 못해 전체 안전관리 기준 자체가 안이하고 느슨한 면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황창화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이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고양시 백석역 인근 열수송관 누수 사고 관련 대책발표에 앞서 고개를 숙인채 연단에 오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역난방公 "내년 1월 재발방지대책 마련"…'늑장대응' 지적=공사는 정밀진단 결과를 토대로 내년 1월말까지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열수송관 유지관리 업무 지침'을 전면 개정하고 유지·보수예산을 연 1000억원 수준으로 확충한다. 비용절감을 위해 열수송관 점검을 외부 용역업체에 맡긴 '위험의 외주화'가 대형사고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반영하기로 했다. 점검 외주인력 112명 전원을 연내 정규직화하고 열수송관 안전 관리 전문회사를 자회사로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늑장대응이라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구간은 지난 10월 자체 점검에서 잔여 수명이 1년 이하인 위험등급 '1등급'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공사는 보수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매일 실시하는 점검에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문제 구간은 사고 당일 진행된 점검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전날(12일) 에너지 공공기관장 회의에서 "문제의 열 수송관은 자체 위험도 조사를 통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소홀히 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뼈아픈 지적이 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정치권 출신 '낙하산' 기관장에 책임을 묻는 비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취임한 황 사장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해 국무총리실 정무수석, 국회도서관장 등을 역임했다. 앞서 야당으로부터 낙하산 인사로 지목된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은 강릉선 KTX 탈선 사고의 책임을 지고 최근 사퇴했다. 황 사장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기술자 출신으로 경력이 있어 누구보다 현장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목동·안산 등 사고 속출…민간 관리 구간은 무방비=문제는 난방공사가 관리하는 배관 외에 민간 운영 온수관은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제든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현재 난방공사가 관리하는 관은 전체의 약 50%에 해당하는 총 2164㎞다. 나머지 구간은 37개 지역난방사업자가 운영한다. 실제로 지난 11일 파열 사고가 발생한 목동 온수관은 서울시 서울에너지공사, 12일 사고가 난 안산시 온수관은 안산도시개발이 관리한다. 난방공사의 이번 점검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정부 차원에서 전체 배관에 대한 통합 안전 관리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황 사장도 이날 "지역난방이 시작된지 벌써 30여년이 넘었다"며 "어떤 면에선 국가적 관리가 이뤄져야 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