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쓰레기 버리는 날?…민감한 정책 금요일에 내놓는 정부

(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4일 오전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 2018.12.14/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 주 업무를 마감하는 금요일인 지난 14일 오전 7시40분.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들의 휴대전화에 일제히 문자 알림이 떴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 세종대로에 있는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연금 개편안의 경우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직장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다. 대통령 지지도에 영향을 줄 정도로 민감하다. 이런 일정이 불과 2시간 50분 전에 통보되자 기자들은 당황했다. 세종시에 있는 복지부 청사로 출되근하는 상당수 기자들은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는 서울청사로 달려갈 여유가 없었다.

◇복지부, 국민연금 개편안 두 번 모두 금요일 발표 = 개편안 내용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뉴스 주목도가 떨어지는 금요일을 골라 발표하는 '꼼수'를 부린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만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습발표 배경에 대해 "지난번 자문위원회 안이 나왔을 때나, 대통령 중간보고를 할 때 정부가 안을 발표하기 전에 언론에서 다퉈서 보도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혼란 초래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왜 금요일을 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정부의 민감한 정책이나 방침을 금요일에 발표하는 것을 ‘금요일 뉴스 털어내기’(Friday news dump)라고 부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17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따르면 종이신문 열독시간은 평일 평균 5.7분인 데 반해 주말 평균은 3분으로, 주말 뉴스 주목도는 크게 떨어진다.

금요일 발생하는 소식을 담는 토요일자 조간 신문의 경우 대부분 주중 신문보다 얇다. 머니투데이는 금요일자 지면을 늘린 대신 토요일자는 오프라인 신문은 아예 발행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주요 방송사의 뉴스 시간도 짧다.


이 때문에 정부로서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만한 정책이 있다면 금요일을 택해 발표하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 반대 진영의 비판이 주말을 지나면서 다른 이슈에 묻혀 희석될 수 있다. 상장사들이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내용을 장 마감 이후에 알리는 '올빼미 공시'로 종종 비판을 받는데, 금요일 이슈를 털어내는 정부가 딱 그 짝이다.

보건복지부는 앞서 지난 8월17일에도 한 차례 국민연금 제도개선안을 발표했다. 이날도 금요일이었다. 하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보험료율 부담이 큰 폭으로 올라가는 내용이어서 거센 역풍이 일었고, 이후 조사된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떨어지자 국민연금 개편안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결국 문 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했다.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8월17일 2022년 수능개편안’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진보 보수진영 양 쪽에서 비판이 거셌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금요일인 9월21일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신도시 입지와 서울 지역 공공택지 대상을 대부분 공란으로 놔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을 샀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일 금요일 주택청약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 또한 집을 넓혀가려는 1주택 실수요자들에게 좌절을 주는 내용이 많아 논란이 큰 내용이었다.

◇청와대도 '금요일'은 '쓰레기 버리는 날'= 청와대도 부정적인 뉴스 발표 시점으로 금요일을 선호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함께 면직하는 발표도 금요일인 지난 11월9일이었다. '경제 투톱'을 동시에 교체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의 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앞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역시 금요일인 지난 7월 20일 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세부 자료 67페이지를 공개했다. 이와 관련해 야당은 2급 비밀을 절차 없이 전격 공개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발표를 통해 수도권 공공택지 확보를 통한 30만호 추가공급, 신혼희망타운 조기 공급, 도심 내 주택공급 확대 등의 방안 추진계획을 밝혔다. 2018.9.2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면 적극 홍보하고 싶은 정책이나 유리한 내용은 일요일이나 월요일을 택해 뉴스 주목도를 높인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정부도 행태는 비슷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금요일인 지난 14일(현지시각) 오후 5시를 넘어 트위터를 통해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비서실장 대행'으로 인선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금요일 늦은시간 인선 발표는 백악관의 구인난을 다룬 보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좌절감을 드러낸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백악관의 일상을 다룬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에도 금요일을 '쓰레기 버리는 날(TAKE OUT THE TRASH DAY"로 묘사한다. 토요일에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적다는 점을 이용해 부정적인 뉴스를 금요일에 한꺼번에 발표하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장은 비판을 덜 받을 수는 있겠지만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한 '페어플레이'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가능한 한 피하고는 싶겠지만 금요일을 택해 발표한 것은 따끔한 비판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비판이 예상되는 정책일수록 정부가 사전에 미리 예고를 해서 발표를 하고 토론과 설득을 하는 공론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중요한 정책을 주목도가 떨어지는 시간에 발표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