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연 400시간 초과근무 허용 '노예법 논란'…1만여명 반정부시위

16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시위대가 행진 도중 스마트폰 불빛을 들어올리고 있다. /AFPBBNews=뉴스1

헝가리에서 연간 400시간의 초과근무를 허용하는 노동법이 통과되자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주말 영하의 날씨에도 약 1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새 노동법을 규탄하는 "총리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헝가리 국기와 유럽연합(EU)기를 흔들며 회쇠크 광장에서 의회와 국영방송사 방면으로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우리는 '노예법'에 반대한다",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건 민주주의뿐(All I want for Christmas is Democracy)"이라는 푯말도 등장했다.

이날 시위는 지난 12일 의회에서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집회였다. 가두행진은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으나 밤늦게 경찰이 최루탄을 쏘면서 혼란을 빚기도 했다.

개정 노동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STOP ORBAN'(오르반 총리는 멈춰라)이라는 푯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앞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이끄는 피데스당은 법정 초과근무 시간 한도를 연간 최대 250시간에서 400시간으로 늘리는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고용주가 단체 협정이나 노동조합을 거치지 않고 노동자 개인과 근무시간을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초과근무 임금에 대한 지급 기한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오르반 정부는 기업과 노동자에 모두 도움이 되는 법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법안에 대해 "헝가리 경제의 약점인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유연성을 강화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오르반 총리도 "더 일해서 더 벌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관료적인 규칙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새 노동법 개정안이 '노예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법안 통과 전인 8일부터 시위대는 EU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달 초 여론조사에서도 헝가리 국민의 83%가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개정노동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오르반 정부는 이번 시위의 배후에 헝가리 태생의 미국인 부호 조지 소로스 등 외부 세력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피데스당은 지난 15일 반대 시위를 겨냥해 "소로스 네트워크가 조직한 거리 폭동에 범죄자들이 결합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열린사회재단 등을 통해 헝가리에 민주주의 이념을 전파하려는 소로스는 오르반 총리의 가장 강력한 정적으로 꼽힌다. 최근 소로스가 설립한 중앙유럽대학(CEU)은 정부 압박으로 인해 부다페스트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전했다.

노동법 개정이 이번 시위의 도화선이 됐지만 그 이면에는 국제사회에서 '스트롱맨'으로 통하는 오르반 총리의 권위적 통치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2010년 처음으로 총리직에 오른 뒤 이번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하며 2022년까지 집권 기한을 연장했다. 헝가리가 1989년 민주화를 통해 공산주의 체제를 벗어난 이후 20년 역사의 절반을 오르반 총리가 통치하는 셈이다.

오르반 총리는 올해 4월 총선에서 의회 3분의 2를 장악한 피데스당을 등에 업고 법원과 대학, 중앙은행, 언론 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키며 꾸준히 권력 집중을 강화해왔다. 헝가리화학노조(VDSZ) 타마스 스제켈리 부위원장은 이날 시위에서 "이 정부는 우리를 무시한다.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