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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펼 틈도 없어"…닭을 '해방'하라[개人주의]

[유승목의 개人주의]A4용지 한 장 크기의 케이지에서 평생…'케이지 프리'(CageFree) 목소리 커져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입력 : 2018.12.2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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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100여년 전 영국의 사상가 헨리 솔트는 "모든 동물은 혈연관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서 함께 공존해야 할 공동체의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를 존중해야 우리도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주 금요일, 무심코 지나쳤던 동물의 목소리를 들어 봅니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작가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런데 웬걸, 겨우 힘겹게 알을 깨고 나왔는데 눈 앞에 쇠로 된 케이지가 몸을 구속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닭의 삶이 그렇다. 대다수의 닭이 알을 깨고 태어나지도 못하지만, 태어나도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날갯짓을 해보기는 커녕,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옴짝달싹 하지도 못한 채 삶을 마친다. '치느님'(치킨+하느님)이라는 찬사와 달리 닭의 일생은 '알 낳는 기계'에 불과하다.

동물도 사람처럼 행복과 고통, 두려움을 똑같이 느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전세계적으로 '동물권'을 추구 운동이 성장하고 있다. 비단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 뿐 아니라 '동물복지' 차원에서 가축들도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좁은 케이지 속에서 알만 낳으며 평생을 보내야 하는 산란계의 해방을 촉구하는 '케이지 프리'(Cage-Free)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날개 펼 틈도 없어"…닭을 '해방'하라[개人주의]
◇닭에게 행복은 사치
사람의 행복을 매일 수 많은 닭이 도축되고 달걀을 낳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도축된 닭의 수는 무려 9억3602만마리에 달한다. 애초에 도축을 위해 태어나긴 했지만 자연수명이나 삶의 질은 꿈도 꾸지 못한다. 닭의 평균수명은 7~13년에 달하지만 고기로 쓰이는 '육계'는 태어난 지 단 한 달만에 도축된다.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다.

알을 낳는 산란계는 2~3년 정도 사니 그나마 육계보다 낫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잘 모르는 소리다. 산란계는 평생 옴짝달싹 할 수 없이 알만 낳아야 한다. 대부분의 농장이 좁은 케이지에서 사육하는 '배터리 케이지'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 농림부의 '가축사육시설 단위면적당 적정 가축사육기준'을 살펴보면 산란계 한 마리의 최소 사육면적은 0.05㎡(25x20cm)에 불과하다. A4용지 딱 한 장 정도 크기다. 그나마 지난 7월부터 0.075㎡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넓다 할 순 없다.

좁고 비위생적인 공간에 있다보니 스트레스와 질병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운동은 커녕 알만 낳다보니 칼슘 부족으로 다리 골절이 쉽게 발생한다. 좁은 공간에서 깔리거나 다른 닭과 싸움이 붙어 죽는 경우도 잦다. 학대도 만연하다. 산란율을 높이기 위해 24시간 조명을 밝혀 잠을 재우지 않거나 일부러 모이는 주지 않기도 한다. 산 채로 부리를 자르기도 한다.
케이지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는 닭의 모습. /사진제공= 동물자유연대
케이지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는 닭의 모습. /사진제공= 동물자유연대
◇닭의 아픔, 고스란히 인간에게
비인도적,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닭들의 스트레스와 해악은 이들이 제공하는 고기와 달걀을 섭취하는 인간에게 돌아온다. 지난해 여름 겪었던 '살충제 계란 파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케이지에서 닭을 사육하는 많은 농가가 닭에 달라붙는 진드기를 박멸하기 위해 '피프로닐'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피프로닐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2급 유해물질로,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산 닭의 진드기 감염률을 94%에 달할 정도로 고질적인 문제다. 하지만 케이지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인도적인 방식으로 닭을 사육하면 굳이 진드기 박멸에 힘쓰지 않아도 된다는 시각이 있다. 자연, 방사 상태의 닭은 본능적으로 '모래 목욕'을 통해 몸의 진드기를 떼어내기 때문. 좁고 비위생적인 케이지에서는 모래목욕이 불가해 진드기 문제에 골치를 앓을 수 밖에 없다.

항생제와 매년 수 천만 마리의 닭을 폐사해야 하는 조류독감(AI)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본성이 억눌리고 비위생적인 사육 환경에서 면역력이 떨어진 닭은 질병에 취약하다. 이 때문에 농장은 닭에게 항생제를 투여하곤 하는데, 미국 식품의약국(FDA) 연구에 따르면 이같은 무분별한 항생제 투여는 인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사진제공= 풀무원
/사진제공= 풀무원
◇닭을 해방하라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닭이 사육되는 동안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케이지 프리 운동이 빠르게 확산됐다. 배터리 케이지는 여러 층을 구성·개방된 축사로 닭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만든 '오픈형 계사'(Aviary)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케이지 프리를 선언하는 기업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동물권 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HIS)에 따르면 미국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 등 3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이 케이지 프리 이행을 약속했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인터콘티넨탈, 힐튼 호텔 등 유명 호텔 체인 뿐 아니라 네슬레(Nestle) 등 유명 식품 기업들도 동참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케이지 프리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내 브랜드 달걀 점유율이 80%에 달하는 풀무원이 대표적이다. 풀무원은 지난 8월 2028년까지 식용란 생산과정에서 모든 종류의 케이지를 퇴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동물복지 목초란을 출시에 이은 보다 적극적인 행보다. 풀무원은 현재 전북 남원에 유럽식 오픈형 계사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1㎡당 9마리 이하의 사육 밀도를 유지하고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일반 시민들의 문제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동물자유연대가 실시한 시민 동물정책 수요조사에 따르면 83.5%의 시민이 '공장식 축산 환경'에 문제의식을 보였고 정책 개선을 요구했다. 이 같은 흐름에 당국도 나섰다. 농식품부는 사육밀도를 낮추고 위생적인 시설을 제공하는 등 인도적으로 가축을 사육하는 농장에 '동물복지인증 산란계 농장' 인증을 하고 있다. 현재 90여개소가 넘는 농장이 동물복지인증을 받았다.
지난 6일 OWA에 소속된 단체 중 하나인 동물자유연대가 '케이지 프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동물자유연대
지난 6일 OWA에 소속된 단체 중 하나인 동물자유연대가 '케이지 프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동물자유연대
◇닭을 해방하라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케이지 프리를 선언하는 기업들이 아직 소수에 불과하고, 케이지 프리를 약속했다가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이 서울 동대문구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서울에 모여 기자회견을 벌인 이유다. 이날 동물자유연대를 비롯, 학대받는 닭의 구제를 추구하는 국제연대체 'OpenWingAlliance'(OWA)에 소속된 전 세계 59개 단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캠페인을 펼쳤다.

이들이 메리어트 호텔 앞에 모인 이유는 케이지프리 선언이 지켜지지 않아서다. 동물자유연대는 "메리어트는 2013년 케이지 프리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했고, 대중은 더 높은 동물복지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선언에 찬사를 보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소비자에게 잔인한 달걀을 고가에 판매하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동물권을 존중하라는 거센 항의에 메리어트는 재차 케이지 프리를 약속했다. 미국 메리어트 본사는 자사 소유 및 가맹영업을 하는 모든 곳에서 2025년까지 케이지 프리로 생산된 달걀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메리어트 역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케이지 프리 달걀 사용을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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