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돈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절대 권력과 ‘맞짱’ 뜬 자본가

머니투데이
  • 김고금평 기자
  • 2018.12.28 06:22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블로그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글자크기조절
  • 댓글···

[따끈따끈 새책] ‘자본가의 탄생’…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업가의 대담한 여정

image
16세기 사업은 위험했다. 사기꾼은 손목을 자르거나 뺨을 부지깽이로 지졌다. 제빵사가 빵에 불순물을 넣다 걸리면 공개적으로 물속에 쳐넣거나 시내를 끌고 다니며 군중의 놀림감으로 만들었다. 대금업자는 가장 가혹한 운명에 처했다. 대금업자는 연옥에서 불 고문을 당한다고 목사까지 설교할 정도였다.

이런 악전고투 속에서도 교황을 주무르고 황제와 ‘맞짱’ 뜨는 금융업자가 있었다. 미켈란젤로를 후원한 메디치도, 국제적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한 로스차일드도, 석유왕 록펠러도 아닌,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가로 꼽히는 야코프 푸거가 그 주인공이다.

1523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의 은행가 푸거는 필경사를 불러 독촉장을 받아 적게 했다. 상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국왕인 카를 5세. 푸거는 이렇게 적었다. “소신이 없었다면 폐하께서는 황제관을 쓰지 못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빌려드린 돈에 이자까지 계산해 지체 없이 상환토록 명하소서.”

15세기까지 교회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되받을 생각 말고 꾸어주어라’(누가복음 6장 35절)는 성경 구절에 근거해 이자 물리는 것을 죄악시하고 고리대금을 금지했다.

푸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자를 동원해 대부자가 차입자에게 정당한 사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푸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교황 레오 10세를 직접 움직였다. 교황은 결국 이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교황 칙령에 서명했다.

거역할 수 없는 시대 흐름 때문인지, 그의 막대한 로비 때문인지 불분명한 이유 속에 푸거는 금융의 문을 연 첫 자본가로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종교개혁을 촉발한 배후에도 그가 있었다. 1514년 마인츠 대주교 자리가 비자, 24세의 대학 학위도 없는, 경쟁력이 가장 떨어지는 알브레히트가 입후보했다. 푸거는 알브레히트에게 돈을 빌려줬다. 돈을 많이 쓰는 교황 레오 10세는 임명 승인을 위한 대주교 자리에 가장 적절한 가격을 던진 알브레히트를 낙점했다.

알브레히트는 이제 어떻게 돈을 갚아야 했을까. 그 아이디어가 면죄부 판매였다.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시작한 종교개혁은 성 베드로 대성당과 푸거가 절반씩 나눠 가진 면죄부 판매 대금에 대한 반발이었다. 재미있는 건 루터가 “종교개혁 하자”며 보낸 설득 편지의 상대가 면죄부의 원흉인 알브레히트였다는 사실이다.

푸거는 고리대금업을 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원대한 꿈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늘 그 ‘너머’를 봤다. 유럽 최고의 부자로 거듭난 발판 중 하나는 투자에 가까운 채권 방식의 대출이었다. 푸거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 대신 권리를 받았다. 막대한 이익을 낳는 권리를 일찌감치 꿰뚫어 본 그는 빚에 쪼들린 은과 구리 광산의 소유권자에게 거액을 빌려주는 모험을 통해 더 막대한 부를 챙겼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첫 대규모 충돌인 독일 농민 전쟁에서는 전쟁 자금을 지원해 자유 기업 체제의 조기 붕괴를 막기도 했다. 동독이 5마르크 지폐에 농민 지도자 토마스 뮌처의 초상화를 새겨 넣을 때 서독은 푸거의 우표를 발행했다. 푸거를 공산주의의 파도로부터 유럽을 지켜낸 인물로 생각했던 것이다.

푸거는 알프스산맥 이북에서 처음으로 복식 부기를 도입했고 세계 최초로 여러 영업 결과를 하나의 재무제표로 통합해 자신의 금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1525년 푸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재산은 유럽 내 총생산의 2%에 육박했다.
투자 감각, 일을 추진하는 수완, 기회를 놓치지 않는 배짱 등 푸가는 자본가가 가져야 할 거의 모든 감각을 갖췄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무엇보다 그는 종교와 정치권력의 위세가 지금보다 훨씬 강력했던 시절에도 돈 앞에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믿었다. 왕이든, 황제든, 교황이든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는 동등한 인간일 뿐이었다.

저자는 “푸거는 사업 동료 이외에 친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외로웠지만 자신의 기준으로 성공한 사업가였다”며 “오로지 부를 추구한 삶을 살았던 그는 기존 가치와 제도를 무너뜨리는 혁신가로서, 성공한 사업가로서, 오늘날 자본가의 전형으로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가의 탄생=그레그 스타인메츠 지음. 노승영 옮김. 부키 펴냄. 384쪽/1만8000원.



칼럼목록

종료된칼럼

오늘의 꿀팁

  • 띠운세
  • 별자리운세
  • 날씨
  • 내일 뭐입지

많이 본 뉴스

메디슈머 배너_비만당뇨클리닉 (5/10~)
남기자의체헐리즘 (1/15~)
블록체인

포토 /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