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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사람이 되기를 택할까, 사랑을 택할까

[줄리아 투자노트]

줄리아 투자노트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입력 : 2019.01.05 07:31|조회 : 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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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배우는데 그 곳에 고양이가 있다. 어릴 때부터 쭉 동물을 무서워 하고 멀리하는 성격이라 고양이와 부딪히지 않으려 늘 조심했다. 게다가 고양이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의 영향으로 더욱 공포의 대상이었다. 인간에게 복수도 하는 영험한 존재라니, 정말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이 고양이가 내 옆에 다가와 몸을 갖다 대고 밀착하고 비비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심장이 뛰고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한 번은 뒷발로 내 발등을 밟고 자기 앞발로 내 허리춤을 잡고 일어서는데 머리가 아뜩해지며 기절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두려움 때문에 고양이를 어디 가둬놓아 달라거나 묶어놓아 달라거나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듯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살아온 인생 전체가 내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이기’(利己) 덩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사는 것, 내가 행복한 것, 내가 편안한 것, 내가 안전한 것만이 오로지 관심사였지 남이 잘살고 남이 행복하고 남이 편안하고 남이 안전한 것에는 크게 마음이 미치지 못했다.

옳은 사람이 되기를 택할까, 사랑을 택할까


나를 무섭게 하는 고양이 따윈 일평생 부딪히지 않고 사는 게 최선이지, 이렇게 내 인생에 불쑥 끼어들어 의식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고 불편하게 되는 건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아들이 떠올랐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지만 이 아들이 고양이 같은 존재일 때가 있었다.(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아들 태몽도 고양이였다.)

나는 아들을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키우고 싶었는데 아들은 내 기대를 벗어나도 심하게 벗어났다. 아들을 찾아 동네 PC방을 뒤지고 다니고, 학교에서 아들이 피운 말썽 때문에 수시로 “잘못했다”, “죄송하다”, “다신 이런 일 없도록 조심하겠다”며 고개 숙이고, 출근했다가 아이가 등교 안했다는 선생님 전화에 부리나케 집에 돌아와 밤새 게임 하느라 다시 잠든 아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고, 그러면 한두 시간 있다 다시 학교에서 애가 없어졌다는 전화가 오고.

이런 일을 3년 남짓 겪으며 마음 속에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차라리 애가 없는게 낫겠다’라거나 ‘어쩌다 저런 애가 내게 왔을까’라는 못된 생각이 수시로 떠오르고, 때론 그 악한 생각이 아들에게 말로도 나갔다. 그런 3년을 겪으며 내가 깨달은 것은 나란 사람은 내가 낳은 아들조차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흔히 사랑이란 ‘때문에’가 아니라 ‘불구하고’라는 말을 한다. 어떤 사람이 잘나고 똑똑하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못나고 부족하고 약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란 의미다. 하지만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인 조던 B. 피터슨은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한계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부를 안하고 게으르고 방을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때로 듣기 싫은 거친 말을 하고 밤새 게임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안하고 게으르고 방을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때로 거친 말을 하고 밤새 게임을 하는, 약하고 못난 아들이기 때문에, 그 한계 때문에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진실하다는 것이다. ‘불구하고’의 사랑은 한계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때문에’의 사랑은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한계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면 상대방의 한계를 자꾸 고치려 한다.

아들이 시간 맞춰 로봇처럼 공부하고 항상 예의 바르고 모든 생활에 틈이 없는 완벽한 아들이었다면 내가 지금 알고 또 사랑하는 아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부족한 모습 그대로, 수많은 한계를 가지고 조금씩 변화하며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는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새해엔 아들은 물론 내 인생에 불쑥 나타나 몸을 비벼대는 고양이에게도, 살아가며 부딪히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의 ‘이기’를 벗어나 따뜻한 관심을 갖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내 편익이 손상당했을 때 합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내게 잘못은 없었나’ 먼저 돌아보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피터슨의 지적처럼 우리는 매 순간 “옳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내가 “옳다고 계속 주장할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협상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내가 옳다면 상대방은 틀린 것이 되고 내가 옳아도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새해엔 옳음보다 사랑을 택해 평화를 얻기를 바란다. 황지우 시인이 노래했던 ‘뼈 아픈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고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고 “내 가슴속엔 언제나 (중략) 사막이 있고”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 아픈 후회는 그거”이며 “젊은 시절, 도덕심 경쟁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고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일 뿐이었으므로 ‘뼈 아픈 후회’를 더는 하지 않도록 이제는 사랑을, 평화를 택하길 원한다.(황지우 ‘뼈 아픈 후회’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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