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판사 판결 받게 된 전직 사법부 수장…구속 가능성은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에 앞서 11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고 최선을 다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이 18일 헌정 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밝힌 입장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되 저질러진 범죄행위의 최종적 결정권자이자 범죄행위를 직접 주도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구속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란 판단에서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는 이제 법원의 몫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양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앞서 박병대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 두 전직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기각된 상황에서 이들의 '윗선'인 양 전 원장의 범죄행위를 소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에서다.

형사 소송 전문인 한 변호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구속이 됐지만 박·고 전 법원행정처 처장과 임 전 차장 간 공모관계가 인정이 안된 상태에서 양 전 원장의 구속 필요성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더구나 양 전 원장으로 올라가는 범죄 고리에 대해 임 전 차장이나 다른 전직 대법관들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라 구속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 역시 "양 전 원장이 공개소환에도 응했고 조서 열람 등을 위해서도 꼬박꼬박 검찰에 출석해 도주 우려가 없다"며 "추가로 혐의가 나온 것이 없는 상황에서 증거 인멸 가능성도 낮다"고 분석했다.


검찰은 박·고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발부가 기각된 이후 관련자들에 대한 추가 조사와 압수수색을 통한 증거물 확보로 임 전 차장에서 두 전직 대법관, 양 전 원장으로 이르는 공모관계 성립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더욱이 양 전 원장은 임 전 차장이 아닌 별도의 보고 체계를 통해 이들과 독립적인 혐의가 입증됐고 직접 외부와 접촉하며 범죄행위를 저지른 점도 충분히 소명돼 구속 사유가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박·고 전 대법관 역시 단순히 임 전 차장에 대한 보고나 지시 뿐 아니라 재판개입 등을 직접 주도했거나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구속영장 발부가 기각됐다는 점에서 양 전 원장의 구속 사유로 이는 불충분하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오히려 검찰이 두 전직 처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두고 박 전 대법관에 대해서만 청구하고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쪽으로 선회한 점을 고려할 때 양 전 원장의 구속 명분이 더 약화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 전 원장의 구속영장 청구 자체가 예정된 수순으로 발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장장 7개월에 걸쳐 이뤄진 '사법농단 수사'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선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 전 원장의 범죄 심각성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영장이 발부될 가능성도 없겠지만 왜 영장을 쳤는지 거꾸로 의문이 든다"며 "영장청구 자체가 수사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정치적 목적인 듯하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과 법원의 싸움이 된 부분이 있어 법원이 영장 발부를 기각해 어쩔 수 없다는 공감대를 얻을 수 있지 않느냐"며 "원칙적으로 불구속 수사가 우선하다는 점에서도 검찰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영장 발부 여부를 떠나 전직 대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자체가 '사법농단 수사'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 전 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이었지만 재판을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는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대 앞에 서 사법부의 일원인 후배 판사의 판결을 받게 됐다. 법과 양심에 의해서만 판결한다는 사법부에 대한 '신화'가 전직 사법부 수장을 통해 무너지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