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흔적 사라진 '용산 참사'…유가족 슬픔은 여전

용산참사 10주기인 20일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옛 남일당 터에서 주상복합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사진=뉴스1

20일 오후, 10년 전 '용산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는 참사의 흔적이 사라졌다. 참사 당시 사망자 6명이 발생했던 남일당 빌딩은 허물어졌고 새로운 주상복합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근을 지나가던 시민 김모씨(42)는 "(남일당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크게 인식하지 않았고 용산 참사 10주기인 것도 몰랐다"며 "같은 일이 반복되거나 잊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10년이 흘러도 유가족들의 슬픔은 여전하다. 용산 참사 희생자 고(故) 이성수씨(당시 51세)의 미망인인 권명숙씨는 "저희 남편이 너무 보고 싶다"며 목 놓아 울었다. 용산 참사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가족들은 어젯밤 일처럼 그날을 기억하며 여전히 마르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이날 오후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는 '용산 참사 1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에 참석한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10년 전과 다름없는 질문을 던지고 같은 요구를 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용산참사 당시 생존자인 김창수씨는 "이명박 정부는 왜 우리를 그 절벽 위에 서게 했는지, 그 사실은 왜 숨기려 했는지,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왜 방해하는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묻고 싶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사진=뉴스1

유가족들은 10년 동안 진상규명을 해내지 못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전했다.

유가족 김영덕씨는 "10년 안에는 진상이 밝혀지리라 생각하고 싸워왔지만 결국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 조사가 중단되고 말았다"며 "10년 만에 처음으로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고 울먹였다.

유가족 권명숙씨는 "모든 것을 되돌려 달라"며 오열했다. 권씨는 "유가족들끼리 '약한 마음 먹지 말고 힘내서 살자'는 위로의 말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10년을 지냈다"며 "아빠(남편)와 함께 한 푼을 벌어도 재미나게 살았을 텐데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이 착한 사람들(용산 참사 희생자들) 이제는 놓아주고 싶다"며 "하루 속히 (용산 참사 책임자들이) 무릎 꿇고 사과하고 국가가 책임자를 처벌해야 유가족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일 오후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추모제'에서 유가족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추모식을 찾아 용산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관련 법 개정 등 추진을 약속했다.

이 대표는 "여전히 재개발·재건축 세입자를 위한 대책은 변한 것이 없고 합법적인 강제집행이라는 이름으로 폭행이 계속되고 있다"며 "폭력 행사를 합법으로 규정한 현행 도시정비법 바꾸겠다"고 밝혔다.

박 최고위원은 "진상규명을 위해 멈춰져 있는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 재개될 수 있도록 살피겠다"며 "폭력적·불법적인 강제 퇴거 등 관행을 유지하는 관련 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용산 참사 당시 순직한 서울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 소속 고(故) 김남훈 경사(당시 32세)에 대한 별다른 추모식 없이 조용히 보냈다. 김 경사는 녹조훈장을 받고 1계급 추서됐다. 경찰은 직무수행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우 1계급 추서하고 훈장을 수여한다.

경찰은 용산 참사 10주기를 즈음해 유사사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놨다. 경찰은 이달 말부터 집회시위 현장 안전진단팀을 운영하기로 했다.

안전진단팀은 집회시위 대응 시 안전담당자를 현장에 배치하고 지침수립, 교육체계 개선 등을 권고한다. 대규모 집회시위 상황이나 시설물 점거 고공농성 등 현장위험요소를 진단하고 현장지휘관에게 안전확보 방안 자문을 할 예정이다.

'용산 참사'는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남일당 빌딩에 망루를 세워놓고 용산 재개발 구역 철거에 반대하던 철거민 32명을 경찰이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당시 사고로 시위대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고 30명이 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