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음주 오토바이 사고가 '산업재해'로 뒤집힌 까닭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1심에서 단순한 음주운전 오토바이 신호위반 사망사고로 간주됐던 사건이 2심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을 받았다. 업무상 재해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1·2심 재판부가 엇갈린 판단을 내린 것이다. (관련기사 : 2018년 6월15일자, 법원 "술 먹고 사장 오토바이 몰다 '꽝'…업무상 재해 아냐")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6부(부장판사 박형남)는 서울 한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고 회식 후 집으로 돌아가다 음주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깨고 지난 16일 유족 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사용자의 전반적 지배·관리 하에 개최된 회사 밖의 행사나 모임이 종료됐는지가 문제될 때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공정하게 보상한다'고 하는 산업재해보상법의 목적에 맞게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의 상고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A씨는 2016년 7월 사장 부부와 동료 직원들과 함께 술자리를 갖고 돌아가던 중 사망했다. 사장 부부가 귀가한 후에도 A씨는 동료 직원들과 인근 편의점에서 30분 가량 음료수를 더 마셨고 자정 무렵이 돼서야 평소 자신이 출퇴근 때 사용했던 사장 소유의 오토바이로 음주 운전을 했다. A씨는 한 사거리에서 빨간불 신호를 어기고 과속 운전을 하다가 승용차와 부딪혀 사망에 이르게 됐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참가한 회식은 업무상 회식이 아니라 동료들과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술자리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며 "A씨가 참가한 모임의 성격이 업무상 회식이 아니라 동료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술자리에 불과한 이상 A씨가 모임을 마치고 귀가한 행위가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는) 통상적인 출퇴근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장이 회식 참석 의무를 부과한 것도 아니고 실제 당일 회식에 참여한 이도 전체 직원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는 등 사정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교통사고가 발생한 과정에서도 A씨의 신호위반 행위 외에 다른 사정이 보이지 않는 데다 상대방 차량의 과실이 개입됐을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결국 A씨의 음주운전과 신호위반이 교통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보이는 데다 A씨의 행위 자체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이나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는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A씨 유족은 1심에 불복해 항소했다. 2심도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사장 부부가 주재한 모임이 즉흥적으로 이뤄지기는 했으나 사장 부부가 직원을 격려·위로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점 등에 비춰보면 이 사건 모임은 사회 통념상 사용자의 지배·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는 '사업주가 주관한 행사'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가 회식 후 동료들과 음료수를 마시고 헤어져 귀가하다가 이 사건 교통사고를 당했다. (편의점에서의 행위는) 사장 부부 주관 회식과 시간적·장소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이 사건 모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이 사건 모임 후 잠깐 음료수를 마시고 귀가하는 과정에서의 교통사고는 산재보험법이 적용되는 사고에 해당한다"고 했다.

아울러 2심 재판부는 "A씨가 탄 오토바이는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에 해당하고, A씨는 업무상 회식 후 자신의 집으로 가는 통상적 경로로 귀가했다"며 "이 사건 교통사고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 중에 발생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봤다.

또 "A씨가 적색신호에 신호위반으로 직진한 과실로 교통사고가 발생한 점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다"면서도 "당시 A씨의 상태, A씨의 오토바이와 상대방 차량의 속도 등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없는 사건에서 오로지 A씨의 범죄행위로 A씨가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