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인하대책에…은행권 "정부 가격개입 지나치다"

금융당국의 대출금리 산출 개선방안을 접한 은행권의 시각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많다. 잔액 코픽스 인하에 따른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마진 감소와 더불어 은행의 고유 가격 결정 권한으로 볼 수 있는 가산금리까지 언제든지 당국의 점검을 받을 조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선 “지난해 말 카드 수수료에 이어 은행, 보험까지 정부의 금융권에 대한 가격개입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우선 정부는 저원가성 재원인 요구불예금 등 결제성 자금을 잔액 코픽스 산출 때 넣어 오는 7월부터 잔액 코픽스 금리가 0.27%포인트(p) 가량 낮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은행권에선 당장은 신규 주담대 중 잔액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 상품의 비중이 낮아 가시적인 영향은 적겠지만, 금리 인상기로 접어든 만큼 여파가 점점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잔액코픽스 인하에 대거 ‘갈아타기’ 가능성=보통 주담대를 받을 때 대출 고객은 고정금리(3~5년 고정 후 변동 포함), 신규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 잔액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낮아 더 많이 판매됐다. A은행 관계자는 “최근 6개월 새 신규 주담대 중에서는 고정금리가 90%에 가까웠고, 나머지 약 10%의 변동금리 중에서도 70~80% 가량은 신규 코픽스 상품이 선택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다. 신규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가 시장금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금리 인상기에는 고정금리나 잔액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 대출이 장기적으로는 유리한 까닭이다. 더욱이 7월 이후 잔액 코픽스 금리가 낮아질 경우 고객 선호가 더 커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은행권에선 ‘갈아타기’가 급증할 것으로 본다. B은행 한 관계자는 “대출 후 3년이 지나면 중도상환수수료가 사라지기 때문에 갈아타는데 제약이 없다”면서 “고객들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지만, 잔액기준 변동금리 상품으로 대거 갈아탈 경우 은행으로선 각종 세금과 예보료 등 매 가입 건마다 드는 고정비용이 많아지고 수익은 줄어들기 때문에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C은행 관계자는 “새로운 잔액 코픽스 도입으로 관련 주담대 상품 금리가 인하될 수는 있겠지만, 은행마다 대출금리 산정체계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만큼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시장따라 가산금리 재산정 요구에…“올려도 되냐” 반문=은행이 가산금리의 구성항목을 주기적으로 월 1회 이상 재산정해야 하고, 금융당국이 해당 운영실태를 점검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선 ‘가격 개입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당국은 유동성 프리미엄과 리스크 프리미엄 등 가격 항목에 대해 ‘시장변화를 반영해 적시 반영하라’고 규정했지만,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 해도 은행들이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상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다.

D은행 관계자는 “작년 1월 신한은행이 한은 기준금리 인상 후 홀로 가산금리를 0.05%p 인상했다가 금융당국의 시정요구로 인해 백지화한 전례가 있다”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가산금리를 재산정하라는 당국 방침에는 내릴 요인을 찾으라는 의지만 담겼을 뿐 올릴 요인이 있으면 올리라는 선택지는 없다”고 말했다.

대출 과정에서 영업점 혼란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다. 소비자에게 금리 산정 과정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금리 세부 내역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으로 은행 직원들이 소비자 응대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카드·은행 이어 보험까지…가격통제 전방위 확산=은행 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업권에서도 정부의 가격 통제가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카드 수수료 인하에 이어 이번에는 은행 대출금리 인하, 모든 진료비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한다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명분으로 올해 상반기 가시화될 실손보험료 인하까지 정부의 가격 개입이 금융권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지주사 임원은 “현 정부의 금융 정책 목표가 포용적 금융이라면 직접적인 가격 조정보다는 취약계층을 위한 서민금융 정책을 확대하면서 금융회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게 나은 방향일 것”이라고 지적했다.